지난 11월 21일 노원문화예술회관에서 김덕기가 지휘하는 프라임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의 비장한 전주곡으로 공연이 시작된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 오페라로 관객과 만났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공연 불황 속에 의정부예술의전당, 하남문화예술회관, 노원문화예술회관이 공동으로 제작해 세 극장에서 차례로 공연하는 작품이다.
오페라의 시작은 베르테르의 시신이 관에 실려 무대를 떠나는 장면과 함께 배경에는 곧게 뻗은 자작나무 숲이 보이고, 하염없이 내리는 눈 속에 홀로 남은 샤를로트(괴테 원작의 ‘로테’)가 오열한다.
공연 초반부터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관객을 압도하는 무대였다. 전주곡의 분위기로 알 수 있듯이 이 오페라는 시종일관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로 진행되는 듯하다. 잠시 이런 긴장을 해소하려는 듯 샤를로트의 아버지 역을 맡은 베이스의 김진추, 그리고 그 친구 역에 테너 김동섭과 베이스 이준석이 유머러스한 연기로 자연스레 극 초반의 분위기를 전환시켰다. 어린 동생들을 연기한 노원구립소년소녀합창단의 밝고 명랑한 분위기 또한 관객들을 즐겁게 했다.
곧이어 무대는 조명만으로 여름과 겨울의 계절적 변화를 연출했다(조명디자인 김명남/ 무대디자인 오윤균). 무대의 전환에 눈 돌리기가 무섭게 이 오페라의 히든카드인 주인공 베르테르 역의 박현재(서울대 성악과 교수/ 연세중앙교회 글로리아성가대 지휘자)가 절절한 감성으로 여주인공 샤를로트(메조소프라노 서윤진)를 향한 연모의 감정을 노래한다. 그의 미성과 가창력이 섬세한 호흡으로 표현되는 순간이었다.
이날 박현재는 이전 어떤 무대에서도 볼 수 없었던 폭발적이고 격정적인 표현력으로 관객들을 사로잡았는데, 알베르와 결혼한 샤를로트를 찾아가 로마시인 오시안의 시를 빌어 애절한 사랑을 표현한 3막과 자살을 시도한 베르테르가 샤를로트의 품에 안겨 숨을 거두는 4막의 장면이 명장면으로 꼽혔다.
박현재는 공연 전 인터뷰에서 “극중 역할을 위해 베르테르가 가졌던 고통과 슬픔을 잘 표현할 수 있도록 매번 소리를 녹음해서 비교하고 또 발성법을 바꿔가며 극에서 요구하는 최상의 소리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독교인이다 보니 자기 자신을 포기하며 자살에 이르는 역할을 절실하게 소화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며 감정 이입에 대한 어려움을 표현하기도 했다.
이미 뛰어난 가창력과 연기력으로 공인된 바 있는 박현재는 베르테르의 역할을 누구보다 잘 소화해낼 수 있는 우리나라에 몇 안 되는 테너로 손꼽힌다. 이번 공연 역시 그의 탁월한 표현력과 섬세함으로 베르테르를 연기해 막이 내린 후에도 관객들을 눈물짓게 했다.
어느 무대에서도 맡은 역할을 잘 소화해내는 이 시대 최고의 테너 박현재. 그의 에너지 넘치는 연기와 가창력으로 더욱 빛난 이번 공연을 필두로 앞으로 있을 모든 공연에서도 최고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리라 기대한다.
박현재는 현재 한국가곡 음반 발매와 카그아트홀 초청 독창회를 준비하고 있으며, 내년에는 서울대 교수임용 5주년 기념 독창회를 가질 예정이다.
위 글은 교회신문 <17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