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

등록날짜 [ 2010-12-08 10:27:27 ]

작곡가 중에는 한 장르에서만 두드러지게 두각을 나타내는 전문 작곡가가 있다. 요즘도 영화음악만을 만드는 작곡가가 있고 뮤지컬만 전문적으로 작곡하는 사람이 있듯이, 예전에도 교향곡만을 작곡하는 사람, 피아노곡만 쓰는 사람, 합창음악만을 작곡하는 사람, 리트(Lied-독일 예술가곡)만을 작곡하는 사람이 있었다.

물론 습작으로는 다른 분야 곡도 쓰지만 유독 한 분야에서 그들의 능력을 발휘한 경우, 또는 그 당시 여건이 어느 한 분야만을 쓸 수밖에 없는 경우에 그들은 자신의 분야에 더 많은 작품을 남기게 되는 것이다.

지아코모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1924, 사진)는 이탈리아 작곡가로서 수많은 오페라를 작곡한 사람이다. 그에게도 몇 개의 다른 작품들, 현악 4중주곡, 교회 미사곡 등이 있지만 그를 대표할 만한 작품은 모두 오페라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그의 오페라는 라 보엠(La Boheme)인데 내게 이 작품이 특별한 것은 연세대학교 재학시절 음악대학에서 이 작품을 올릴 때 내가 부지휘자로서 준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오페라 지휘로는 경험이 전무(全無)하던 그 시절, 주역을 맡은 성악과 학생들과 함께 경험한 극음악의 묘미는 지금도 내게 중요한 경험으로 남아 있다.

나는 그전까지는 음악은 그저 좋은 소리의 집합으로만 생각했다. 작곡가의 천재적인 영감으로 음들을 나열하는 것인 줄만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한 작품을 깊이 있게 연구하다 보니 작곡가는 특히 오페라나 다른 성악곡 작곡가는 작품을 쓸 때 우선 그 가사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몇 번이고 되새기며 그 가사의 의미를 가장 잘 표출할 수 있는 선율을 몇 번이고 수정해 가며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 오페라 ‘라 보엠’에서는 작곡가가 등장인물의 세밀한 심리묘사, 극적 상황의 배경 등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디테일한 부분까지 음악에 담고 있다. 그것은 마치 수수께끼와 같아서 처음 들을 때는 그 부분을 인식할 수 없으나 알면 알수록 하나씩 벗겨지는 베일에 싸인 존재와 같다.

오페라 ‘라 보엠’은 가난한 청년 시인 로돌포와 그와 함께 사는 친구 세 명(화가 마르첼로, 음악가 쇼나르, 철학자 콜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재치 있지만 다혈질 마르첼로의 성격을 첼로와 콘트라베이스의 저음부 현악기가 강렬한 리듬으로 표현하고, 항상 낙천적이고 서정적인 주인공 로돌포는 제1바이올린이 아름다운 멜로디로 연주한다. 염세주의에 빠진 철학자 콜린의 테마는 혼이 맡고, 음악가 쇼나르는 바이올린을 비롯한 현악부 전체가 빠르고 경쾌한 리듬으로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그의 성격을 나타낸다.
그들의 집주인 베노아가 갑자기 찾아와 방세를 내놓으라고 협박하고 마르첼로가 절묘한 계략으로 그를 내쫓는 에피소드가 있고 나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살리려고 파리의 크리스마스 시장(-유럽에서는 성탄절을 앞두고 약 한 달간 특별한 장이 열린다. 특히 파리의 그것은 유명하다-)에 나가고, 주인공 로돌포는 글을 쓰기 위해 혼자 남는다.
로돌포가 혼자 남은 다락방에 여주인공 미미는 꺼진 촛불을 다시 점화하러 들어오는데, 병약한 미미는 계단을 올라오다 지쳐 잠시 졸도한다. 이를 친절히 간호하던 로돌포는 그녀의 모습에 빠지고 다시 돌아가던 미미는 도중에 자기 방 열쇠를 잃어버린 것을 발견하고 로돌포에게 도움을 청한다.

추운 겨울 날씨에 얼음처럼 차가운 그녀의 손을 잡고 안타까운 마음과 사랑의 감정이 싹트며 부르는 노래가 그 유명한 아리아 ‘그대의 찬 손’이다. 글로는 다 담을 수 없는 감정의 변화, 주인공들의 심리, 상황 묘사들을 푸치니는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모두 담고 있다.

오페라 중에는 이처럼 내용과 선율이 모두 아름다운 곡들이 많지만, 대개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은 오페라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우선 길이가 길고 그들은 ‘오케스트라 피트’라고 불리는 오케스트라 자리에 들어가 있어서 청중석에서는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성악가들만 보이지 오케스트라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말하자면 자신들이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음악감독이 오페라를 연습할 때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내려와서 한 말이 생각난다.
“오케스트라 여러분, 여러분은 인간의 내면세계와 같습니다. 모두 무대에서 노래하는 성악가를 바라보지만 실제 음악은 여러분의 연주에 있지 않습니까?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이 빈 사람이 아무 매력 없듯이 만약 오케스트라 연주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우리가 하는 음악도 그러할 것입니다.”

나는 이 말에 항상 동감한다. 진정 중요한 것은 보이는 ‘겉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속사람’이란 것을. 진정 중요한 것은 보이는 육신의 때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혼의 때라는 것을. 

위 글은 교회신문 <22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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