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0-11-24 13:02:34 ]
러시아 망명 음악가의 실제 이야기 영화 ‘레드 핫’
쇼팽의 피아노곡과 대중음악의 조화 잘 어우러져
‘레드 핫’. 이 영화는 오래전, 내가 대학에 입학할 무렵인 1993년에 제작한 영화다.
한창 음악 관련 영화에 흥미를 느낄 때 접한 영화인데, 시간이 흘렀음에도 영화 제목이 주는 강한 느낌 그대로 영화 장면들이 지금까지도 내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기억하는 장면은, 이 영화 주인공이 여자 친구에게 음악교사로서 피아노 레슨을 하는 장면이다.
이 부분에서 쇼팽 피아노곡의 느린 선율 부분을 아름다운 소리로 표현하기 위해 건반의 깊이와 기술적인 팔 움직임을 여자 친구가 느끼게 하려고 주인공의 손 위에 여자 친구의 손을 올려 레슨하는 방법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실제로 피아노 레슨에 종종 사용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러시아 음악가의 실제 이야기
잠시 이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1959년, 구소련연방 라트비아공화국의 영재를 위한 음악학교를 배경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천재성이 엿보여 학교에서 유망주로 주목받는 주인공은 음악가를 꿈꾸며 매우 보수적인 클래식 교육을 받았다.
어느 날 우연히 외국에서 돌아온 외삼촌에게 미국 레코드판을 받으면서 주인공은 난생처음 금지된 세계의 음악인, 미국의 최신 록음악(엘비스 프레슬리) 등을 접한다. 그리고 그 금지된 음악의 엄청난 매력에 빠지고, 친구로 말미암아 은밀히 복사판까지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우연히 주변 친구들에게 배포되고 그로 인해 결국 KGB(소련비밀경찰)의 은밀한 수사가 뒤따르며 사건이 심화한다.
반면 주인공은 고위 관리직 딸이며 같은 학교 또래 여자 친구의 피아노 가정교사로 일하는데, 쇼팽 음악을 배경으로 한 주인공들의 수줍지만 로맨틱한 러브스토리가 여기서 전개된다. 주인공과 친구들은 결국 밴드를 결성하고 친구들을 초대해 그들만의 로큰롤음악회를 열지만 그로 인해 KGB에 의해 체포되어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과 여자 친구는 그들이 원하는 음악과 삶의 자유를 찾아 미국으로 망명한다. 사실, 이 영화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망명한 두 음악가의 실화다.
쇼팽의 피아노 연주곡 배경
이 영화는 단순히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라기보다는 음악을 통해 주인공들에게 주어진 환경과 삶을 보여 준다. 젊음의 패기와 열정으로 청년 시기에 감행하는 모험, 용기, 순수함 그리고 어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엉뚱함으로 가득하다. 영화는 장면마다 클래식음악과 대중음악의 조화를 이루며 젊은이들의 도전 정신을 고조한다.
이 영화를 통해 먼저 추천하고 싶은 클래식음악은 이미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쇼팽의 피아노곡이다. 영화의 여러 장면과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이 쇼팽의 음악은 연습곡(에튀드-Etude) 중 작품번호10(Op.10)의 No.3 ‘이별의 노래’와 프렐류드(Prelude) 작품번호 28의 No.16이다.
이 두 곡은 특히 주인공이 가정교사로 피아노 레슨을 할 때, 가벼운 곡과 깊이 있는 곡의 연주를 비교하기 위해서 여러 번 교차하여 함께 등장한다. 사실 이 두 곡은 피아니스트들이 좋아하고 즐겨 연주하는 곡의 하나로, 보통은 한 곡씩 연주하기보다 한 작품에 연속한 여러 곡을 한꺼번에 연주하는 형태로 다양한 피아노 테크닉을 훈련할 수 있는 음악적 완성도가 높은 곡이다.
그리고 소련 음악학교 교육을 잠시 엿보는 청음(음의 소리와 박자를 듣고 분별할 수 있는 능력) 수업에 등장하는 슈베르트 즉흥곡 작품번호 90의 No.2는, 교사가 학생들의 청음 실력 향상을 위해 피아노로 직접 연주하고 동시에 학생들은 수많은 음정을 한 번씩 듣고 오선지에 옮겨 적는데, 그 모습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슈베르트 즉흥곡 작품번호 90은 4개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에서는 그 중 No.2의 중간 부분만 살짝 연주하는데, 처음 시작 부분의 아름다운 멜로디를 감상한다면 슈베르트의 음악적인 색채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의도적이거나 의도적이지 않거나 억압된 환경에서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용기와 도전이 무척 아름다웠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비전과 하늘에 소망을 둔 청년들에게 이 영화와 음악을 함께 추천하고 싶다.
위 글은 교회신문 <21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