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우리는 언제나 착각 속에 산다

등록날짜 [ 2010-12-01 10:30:41 ]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비난이 있는 것
신앙은 자신을 알고 진리를 바로 아는 과정이다

우리는 대개 인간이 이성을 가진 합리적 존재라고 믿는다. 특히 고등교육을 받고 교양을 많이 쌓은 사람일수록 자신은 남보다 더 객관적으로 세상을 보고 현명한 선택을 하며 영리하게 판단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요일3:7)는 말씀에서 보듯 성경은 여러 곳에서 미혹에 대해 강하게 경계한다. 미혹은 어리석은 사람들만 빠지는 함정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구조에 깊숙이 내재한 보편적 속성이다.

자아와 인간 행동에 관한 많은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수시로 착각에 빠지고 엉뚱한 판단을 하면서도 자신의 오류를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외부 요인이 뭔가를 결정할 때 강한 영향을 주었는데도 자신이 자발적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믿기도 한다. 자아가 언제나 이미지의 영향을 받으며 자신을 중심에 두고 만사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 속고 있지만 그것을 전혀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이다. 이런 것을 보여주는 많은 실험이 있다.

착각에 관한 여러 실험
어떤 낯선 사람과 얘기를 나누는 중간에 그 사람이 순식간에 다른 이로 바뀐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까? 심리학자들이 길에서 실험을 해봤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지도를 보여주면서 길을 묻는다. 서로 한창 얘기를 나눌 때 큰 거울을 운반하는 사람이 우연처럼 두 사람 사이로 지나가고 그 틈에 사람을 바꿔치기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대부분은 사람이 바뀐 것도 모른 채 여전히 길에 대해 설명을 한다. 심지어 처음에 얘기하던 사람이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어도 눈치를 못 채는 경우가 있다. 아마 길에서 얘기를 나누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병원에서 처음 진찰을 받으러 온 환자 몰래 의사를 바꾸면서 실험을 해도 유사한 결과가 나온다. 이것은 우리가 친하지 않은 사람과 사무적 용건으로 얘기할 때 그 사람보다는 용건에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어떤 사람이 아주 눈에 튀는 의상과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인 농구장에 들어가서 돌아다녀 본다. 언뜻 생각하면 사람들이 갑자기 등장한 이상한 모습의 불청객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볼 것 같지만, 실험을 해보면 거의 무관심하다. 한참 강의가 진행 중인 강의실 앞문을 열고 지각한 학생이 조심스럽게 들어온다. 일제히 그 학생에 눈길이 쏠리고 지각한 사람은 무안해 하지만 사람들은 이 학생을 금방 잊는다. 내가 남들에게 자랑하려고 명품 옷이나 장식품을 몸에 걸쳐도 모두가 나에게 시선을 주지는 않는다. 이것을 심리학자들은 ‘각광 효과’라 부르는데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한곳에 비추면 그곳만 집중하고 나머지는 어둠 속에 가려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무실 한구석에 무인 음료대를 놓고 음료를 마신 후 바구니에 돈을 넣게 하였다. 그리고 음료대 위에 한 달 동안은 꽃그림을, 한 달은 사람의 눈 사진을 붙여 놓았다. 무인 음료대에는 지키는 사람이 없었지만 신기하게도 사람 눈 사진이 붙어 있을 때가 꽃 그림보다 두 배 이상 돈이 더 들어왔다. 물론 음료를 마시는 사람들은 이 그림에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지만 무의식이 서로 다른 행동을 유도한 것이다.

또 다른 재미난 실험도 있다. 학생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재미있는 만화책을 보게 했다. 한 그룹의 학생들은 막대를 가로로 물게 하고 다른 그룹은 세로로 문 채 만화를 보게 했다. 나중에 만화가 재미있었냐고 물었더니 막대를 세로로 물었던 학생들이 훨씬 재미있었다고 응답했다. 막대를 가로로 물면 찡그린 표정이 되고, 세로로 물면 웃는 표정이 되는데 이런 표정의 차이가 뇌에 서로 다른 자극을 준 것이다. 이 학생들은 자신이 재미가 있었는지 판단한 것처럼 믿지만 사실은 뇌가 자기도 모르게 속은 것이다.

자아가 착각의 원천이다
위에 열거한 것과 비슷한 실험은 아주 많다. 이런 실험을 통해 우리가 어떤 것을 보고 판단할 때 알게 모르게 많은 오류와 착각을 한다는 것을 심리학자들은 증명한다. 사람의 오감은 한계가 많고 어떤 것을 볼 때 지금 시점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만을 절대화하는 경우가 많다.

자아가 이렇게 착각의 원천인 것은 본질적으로 내면의 심리와 정서에 따라 해석되는 이미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앙리 왈롱이라는 프랑스 심리학자는 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이미지에 집착하면서 자아와 인격을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거울의 이미지라는 것이 실은 허상인 경우가 많은데 실제가 아니라 눈에 보이는 것만 강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주 어린 아이는 아직 운동신경이 발달하지 못해 자신의 신체를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지만 거울의 이미지는 완벽한 이상처럼 느껴진다. 일단 이렇게 자아가 만들어지면 세상을 온통 자신의 이미지를 기준으로 해석하려고 하고 이런 가운데 착각이 발생하는 것이다. 예컨대 자신이 기분이 좋으면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좌절하거나 분노할 때는 세상이 추하게 보이고 불쾌하게 생각된다.

인간은 카메라가 렌즈를 통해 들어오는 풍경을 음화로 기록하듯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늘 자신의 욕망이 반영된 이미지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그 이미지에 확신을 주는 여러 경험에 의존하면서 판단을 내린다. 그러다 보니 늘 자기라는 좁은 울타리에 머물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절대적인 진리처럼 믿는다.

어떤 것을 우리가 좋게 생각할 때 그것은 나와 닮았거나 내 이익에 딱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 어떤 미국 심리학 팀이 대학생들에게 여러 합성 사진을 보여주면서 게임 파트너로 적합한 사람을 골라 보라고 했다. 실험 결과 학생들이 마음에 드는 파트너로 고른 이미지는 자기 자신과 닮은 사람이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갖거나 어떤 것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쉽게 얘기하는 것도 자아의 고질적인 자기중심성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내가 경험한 것과 내 기호에 의지하면서도 남들도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한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맹목적인 착각에서 벗어나자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이미지에 지배를 받고 언제나 자기중심적인 자아를 통해 세상이나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소한 위의 여러 실험에서 보았듯이 자아가 늘 우리 자신을 속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내가 언제나 착각 속에 산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고 보고 믿는 것에 절대적으로 의존한다면 더욱더 어리석은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자아의 착각은 나의 주관적인 경험과 생각을 객관적인 것처럼 포장하기 때문에 그 위험을 늘 경계해야 한다. 더욱이 자신도 모르게 타인의 욕망이나 사회적인 것에 자극을 받으면서 그것을 내 생각처럼 믿는다면 이것은 소외된 삶에 다름 아니다.

성경은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고후4:18)라 하면서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말라고 경계한다.

우리가 보는 세상의 이미지가 그 자체로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진리처럼 내세우고 믿는 자아가 우리를 착각으로 몰고 간다. 소비와 물질 만능 사회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진정한 복음을 전해주기 위해서라도 먼저 신앙인들이 우리를 헛된 욕망에 가두는 착각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 신앙은 자신을 올바로 찾고 진리를 바로 보는 것이기도 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21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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