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02-02 15:51:27 ]
에밀 놀데 ‘예수의 생애’, ‘최후의 만찬’
성경 내용을 거친 필체와 색채로 표현
에밀 놀데(사진, Emil Nolde, 1867~1956)는 독일 표현주의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로서 수채화가, 풍경화가로 알려졌으며 거친 필체와 강렬한 색채로 성경 내용을 전달한 종교화가로도 더욱 유명하다.
20세기 초 프랑스 파리에서는 야수주의(野獸主義, 포비즘)가 나타나 유행했는데 이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담한 색채를 사용하여 보는 사람의 감각에 직접 호소하는 그림이다. 그 무렵 독일에서도 색채를 강렬하게 표현하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를 ‘표현주의’라 불렀고, ‘브뤼케(다리파) 그룹’과 ‘청기사 그룹’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반 고흐, 뭉크, 폴 고갱과 같은 표현주의 화가들은 공통적으로 태양빛 가시광선에서 볼 수 있는 원색을 즐겨 사용하였으며, 정열적인 성향을 갖고 있다. 에밀 놀데는 이들의 화풍에 공감하면서도 거친 붓 터치와 노랑, 빨강, 녹색 등과 같은 강한 원색물감을 마음껏 사용하면서 자신만의 개성 있는 종교화를 만들어 갔다.
<사진설명> 1909년 作 ‘최후의 만찬’ (86x107cm, 캔버스 유채, 코펜하겐 국립 미술관 소장)
실감 나게 표현한 예수 생애
에밀 놀데의 작품은 기존 성화에서 볼 수 있는 엄숙한 위엄과 신비감에서 벗어나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일어난 예수의 삶과 고난을 조명하였으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성경 이야기를 다룬 종교화를 시도했다.
1911~1912년에 걸쳐 완성한 <예수의 생애> 시리즈는 그리스도의 탄생에서부터 죽음, 부활, 승천에 이르기까지 ‘성스러운 밤’, ‘세 명의 동방박사’, ‘열두 살의 그리스도’, ‘그리스도와 유다’, ‘십자가에 달리심’, ‘무덤가의 여인들’, ‘부활’, ‘의심하는 도마’, ‘승천’ 등 아홉 가지 주제의 그림을 모아 놓은 제단화(교회 제단에 비치하던 회화 양식)로서 놀데의 종교화 중 가장 큰 규모의 대작이다. 이 작품 중 ‘십자가에 달리심’은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사건을 중심 주제로 다루고 있는데 작품 속에 나오는 예수의 얼굴은 기존 성화에서 보았던 고운 풍채를 지닌 신성한 모습은 아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나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악하고 무지한 사람들 속에서 인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고난당하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지니고 있다. 강렬한 원색으로 이어지는 색채 대비와 거친 붓 터치는 예수의 고통을 더욱 실감 나게 표현해 주고 있다.
1909년에 완성한 ‘최후의 만찬’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 속의 장엄하고 성스러운 공간에서 치러지는 만찬과는 대조적으로 비좁은 다락방 안에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이 가진 조촐한 만찬을 묘사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둘러싸인 마지막 저녁 식사 장면에는 떡과 포도주가 보이지 않는다. 식탁 한가운데는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실 것을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이 집중되어 있을 뿐이다.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 유언을 선포하실 예수, 붉은색 머리와 빨간 외투를 걸친 모습은 강한 색채 대비로 방 안의 긴장감을 고조한다. 유난히도 커 보이는 예수의 투박한 손은 사회 저변에서 노동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상처 입은 손과도 닮았다.
이렇듯 거칠고 직설적인 표현 양식은 놀데가 의도적으로 추구해온 원시적 회화기법에서 비롯하였다. 그의 종교화가 고상하고 위엄 있는 전통적 분위기를 탈피해 평범한 사람들이 쉽게 다가가도록 격식을 생략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의 구원주가 되어 주신다는 순수한 신앙의 고백에서 나온 것이었다. 놀데는 이외에도 <예수와 어린아이들>, <병자를 고치는 예수>, <성령 강림절>, <아브라함과 이삭>, <황금 송아지 주변에서의 춤>, <순교자> 연작 등과 같은 다수의 종교화를 남겼다.
놀데는 한때 ‘회화의 원칙조차 모르는 졸작’이라는 혹평을 받고 전시회 출품을 거부당한 적도 있었지만, 그는 감정을 솔직하고 자유롭게 표현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하고자 했다. 교리에 얽매이기보다 마음속 깊이 우러나오는 신앙 열정과 감동을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에밀 놀데는 현대미술과 종교를 가장 성공적으로 결합한 현대미술가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설명> 1912년 作 ‘십자가에 달리심’ (220.5x193.5cm, 캔버스 유채, 놀데 재단 소장)
위 글은 교회신문 <22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