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온화하고 정서적 화법 강조한 화가

등록날짜 [ 2011-10-28 02:22:47 ]

이탈리아 시에나 화파 이끌며 미술 발전에 이바지
원근화법 발달하지 않은 당시 적절한 배치로 표현

디 부오닌세냐(Duccio di Buoninsegna, 1255~1318)는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초까지 이탈리아 시에나에서 활동한 화가다. ‘회화의 아버지’라 불리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활동한 조토 디 본도네(1266~1337)와 동시대를 살았으며, 조토를 중심으로 극적 긴장감과 조형성을 중시한 피렌체 화파(畵派)와는 달리 온화하고 정서적인 화법을 강조한 시에나 화파를 이끌며 이탈리아 미술 발전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비잔틴 미술 화풍
르네상스가 시작하기 이전 서양 미술은 원근법을 도입하지 않은 시기였으므로 회화는 평면 예술에 가까웠다. 그러나 두초는 그의 작품에서 공간 개념을 보여주었다. 또 사물에 대한 충실한 묘사력과 정서적 표현기법을 사용해 중세 미술의 오랜 전통과 새로운 문화 예술의 시작을 연결하는 조화도 이루어냈다. 두초의 이러한 화풍은 동양적이며 화려한 색채를 강조하여 신성함을 표현하고자 한 비잔틴 미술을 더욱 세련된 화풍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그중 <시험받으시는 그리스도>는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받으시는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성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구상하고 도해(圖解)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보지 못한 것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는 화가의 과제였을 것이다.

마태복음 4장을 중심으로 마귀에게 시험받는 예수를 작품으로 표현하려면 마귀와 예수를 극적으로 연출하고 높은 산과 도시를 배경으로 넣어야 하는 구상이 필요하다. 아직 본격적으로 원근화법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인지라 화면 전체의 공간 구도가 자연스럽지 못하고, 등장인물과 주변 배경인 산과 도시의 배치가 종이로 오려 붙인 듯 어색해 보인다.


<사진설명> 두초 디 부오닌세냐 작(作) <시험받으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장엄하고 진중한 표정, 기다란 코와 작은 입은 전형적인 비잔틴 양식을 나타내며, 마귀의 날개는 그가 타락하기 이전 천사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천하만국을 상징하는 도시의 건물은 두초의 세밀한 관찰력에서 비롯한 묘사를 반영했다.

높은 곳에서 유혹하는 장면 강조
예수께서는 광야에서 40일간 주리시고 금식하신 후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셨다. 첫 번째 시험에서 마귀는 돌을 명하여 떡 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다. 40일 밤낮을 금식하시고 주리신 것을 안 마귀는 예수의 가장 약한 부분을 공격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고 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자신에게 경배하면 세상 영광을 다 주겠다고 흥정했다.

이에 예수께서는 이 모든 시험을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대적하고 물리쳤다. 하나님의 아들조차 자신의 말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싸움의 병기로 삼으셨다.

이 그림의 상황은 세 가지 시험 중 마귀가 높은 곳에 올라가 예수께 천하만국을 보여주며 시험하는 장면을 묘사했다. 마귀는 예수를 유혹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로 높은 곳을 택했다. 높은 곳은 안목의 정욕을 통해 세상 영광을 보암직스럽게 보여주기에 적당했기 때문이다.

마귀는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천하만국과 영광을 네게 주리라”고 말했다. 그럴듯한 제안으로 예수를 자신의 발아래 굴복하게 하고 하나님 자리에 오르려 했으나, 예수는 하나님을 도전하는 마귀를 더는 대면할 가치가 없음을 아시고 말씀으로 단호히 물리치셨다.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4:10).

인간에게는 높은 곳을 좋아하는 욕망이 있다. 권세와 명예를 맛본 자가 끊임없이 그 자리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낮은 곳에 임하라고 말씀하신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20:26~27).

높은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안식처가 될 수 없다. 우리가 소망해야 할 높은 곳은 주님 계신 천국이다. 오직 그곳만이 안전하고 영원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26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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