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1-11-29 13:48:04 ]
사이버와 실생활 괴리에서 오는 문제점 대두
사람들은 21세기를 정보사회, 혹은 탈(脫) 산업사회라 부르며 인류가 새로운 발전단계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정보사회란, 인간의 지식, 축적된 정보, 욕망을 충족해주는 서비스가 산업의 토대가 되는 사회로, 발달한 통신기술과 디지털 미디어가 주도하는 첨단 미래다.
미래학자 피터 드러커는 현대를 지식사회라 부르며 이제 자본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인간의 창의성이 중요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확실히 정보통신은 인류의 삶을 하루가 다르게 변모시키고 편리함을 극대화하고 있다. 이제 안방에서 지구 반대편 사람과 실시간으로 대화를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며 웹 사이트로 상품을 구매하거나 다양한 비즈니스 활동을 한다.
산업사회가 개인을 원자화하고 획일화한 대중으로 만들었다면, 정보사회는 다양한 교류와 협력을 가능하게 하면서 개인을 정보의 소비자이자 생산자로 변모시킨다.
또 지식의 확산으로 대중이 계몽되고 정치참여와 의사소통의 기회가 많아지면서 민주화가 확산하기도 한다. 튀니지에서 시작한 시민봉기가 중동으로 삽시간에 번져서 카다피 같은 독재자가 권좌에서 쫓겨난 것도 따지고 보면 네트워크 덕분이다.
우리나라처럼 자원이 부족하고 수출의존도가 높은 나라에서 첨단 정보통신산업은 새로운 부가가치의 원천으로 주목받아 집중적으로 투자되고 있다. 이미 한국 인터넷기술과 멀티미디어 환경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고 있으며, 스마트폰도 급속히 확대되어 디지털 혁명이 본격화하고 있다. 거의 모든 서비스를 인터넷으로 이용할 수 있으며 소셜 네트워크 비중이 커져 사회구조와 삶의 양상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 혁명이 열고 있는 사이버 공간의 증가와 뉴미디어 기술은 여러 문제점을 낳기도 한다. 물론 시대 변화에 맞춰 기술 변화를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지만 좀 더 냉정하게 그것의 폐해를 인식하여 정보화 물결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
사이버 시대 정체성의 위기
사이버 공간은 개인의 존재 방식을 바꾸어 다양한 정체(正體)를 실현할 수 있게 해준다. 사이버 공간은 물리적인 제약을 넘어 자신의 욕망에 따라 무한히 자아를 확장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이버 세계의 주체인 아바타가 그것인데, 공간 특성에 맞게 성, 나이, 성격, 활동을 원하는 대로 바꾸어 개성을 표현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다. 가상공간에서 활동하는 아바타는 유동적이고 익명성을 기본으로 하므로 현실과 정반대 되는 캐릭터로 자신을 표현할 수도 있고,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다.
사이버 공간의 특성상 개인의 정체를 구성하는 외모, 행동, 신체적 조건이 생략되고 특정한 특성이 아바타를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의 자아를 가꾸기보다 사이버 공간에서 끊임없는 변신만 꿈꾸며 아바타에 일체감을 갖다 보면 종국에는 정체에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온라인에서 보여준 모습이 실제와 달라서 실망할까 봐 오프라인의 만남을 극구 피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이 그것을 입증한다. 정체 위기는 삶의 위기를 불러오며 사회적 관계에 치명적 해악을 가져올 수 있다. 영화처럼 현실에서 완전히 떠나 사이버 공간에만 머물 수 없기 때문이다.
가상현실의 확장과 디지털 노마드
가상현실은 컴퓨터 기술과 통신망이 만들어낸 사이버 공간으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무한한 상상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원래 비행훈련 같은 교육을 위해 시뮬레이션을 만든 것이 시초지만, 게임 산업이 커지고 3D 영상 같은 기술이 접목되자 점차 그 영역이 확장되고 있다.
가상현실의 가장 큰 특징은 인간이 은밀하게 원하는 판타지를 제약 없이 실현해주며 현실에서는 불가능하거나 금지한 것들이 다 허용된다는 것이다. 또 그 안에서 사람을 만나고 직업을 가지며 물건을 사고파는 등 현실과 유사한 활동이 이루어지며 점점 더 진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 린든 맵스사가 개발한 <세컨드 라이프>는 그 안에서 아바타를 통해 다양한 경제활동과 관계를 맺으면서 문자 그대로 제2의 생을 사는 3D 게임으로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들도 이곳에 공간을 마련해 다양한 상품을 팔면서 가입자들을 유혹하고 돈벌이를 한다.
그런데 가상현실에 빠지다 보면 현실을 회피하고 환상만 추구하는 디지털 폐인이 되기 쉽다. 지나치게 폭력적인 게임에 몰두하던 청소년들이 게임을 흉내 내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자크 아탈리는 현실이 아니라 가상현실을 떠도는 현대인들을 디지털 노마드(유목민)라고 부른다. 이들은 자유롭고 새로운 모험을 즐기는 세련된 문명인 같지만, 현실 세계보다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사이버 공간의 활동을 더 중시하고, 고정된 정박지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영역을 찾아 이동하여 자칫 자신만의 환상에만 안주하기 쉽다.
예컨대 인터넷 교회에 익숙한 교인들은 현실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교제와 봉사를 두려워한다. 사이버 공간이 현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 디지털 노마드의 삶은 오히려 정체의 분열을 극대화하여 현실감각을 잃어버리게 할 수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기업들이 상업적 목적으로 가상현실을 활용하여 자유의 이름으로 디지털 노마드적 삶을 은연중 부추긴다는 것이다. (다음호에서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26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