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노래에 담긴 가사의 중요성

등록날짜 [ 2012-02-28 13:07:34 ]

마음으로 전달하는 진실함은 곧 노랫말에 있어
연주곡도 가사 생각하며 감상하면 그것이 찬양

이 세상에 수많은 노래가 있다. 사람들이 좋아하여 천 년이 더 되도록 전해오는 노래가 있는가 하면, 얼마 가지 않아 사람들에게 잊히는 노래도 있다. 노래라도 그 수명이 참으로 다른 것을 본다.

음악 발생(發生)에 관한 역사적인 논리를 떠나서, 노래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나름대로 상상해 본다.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할 때 단어 사이의 강약이 운율을 만들고, 억양과 운율이 음 높낮이와 길고 짧음이 되어 노래가 되지 않았을까.

음악 행위의 세 형태로는 작곡(作曲), 연주(演奏), 감상(鑑賞)이 있다. 악곡에는 가곡, 합창곡과 같이 가사가 있는 성악곡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기악곡이 있다. 또 성악곡이라 하더라도 특정한 가사 없이 목소리를 악기처럼 사용한 곡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작곡가 대부분은 곡을 만들 때 가사가 있는 노래의 경우, 가사에 맞는 감정을 지니고 그 언어에 맞는 선율을 만들어낸다. 그런가 하면, 가사가 없는 곡은 작곡가의 생각이나 감정, 분위기를 악보로, 음으로 구체화한다.

그런 작업에서 수많은 시간을 거쳐 정립한 작곡의 방법과 이론이 장르별로 체계화하여 사조(思潮)에 맞게, 용도에 맞게, 필요에 따라 가장 적절한 곡을 쓰게 된다. 결국은 가사가 있을 때는 가사가 곡을 이끌어가는 것이고, 가사가 없을 때는 정해지지 않은 무형의 가사가 곡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듯하나, 음악이 오랜 세월 분업화함에 따라 모든 형태의 음악이 본질적인 내용보다 어쩌면 그 형식과 기교를 더 우선하여 기본적인 핵심을 놓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함을 깨닫는다.

현대 클래식 작곡계는 바로크, 고전, 낭만, 근대를 지나 20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인 현대음악을 만들고 있다. 고전이나 낭만 음악을 통해 듣기에 편하고 감성적인 음악에 젖은 청중에게 지금까지와 다른 체계의 아름다움을 전하려다 보니, 많은 연구와 근거, 기술이 필요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음악을 끌고 가야 하는 ‘정신’보다 학술적이고 기술적인 면을 더 우선시할 수 있겠다는 우려를 해 본다.

연주자는 어떠한가? 성악의 경우, 많은 성악 지망생과 성악가가 좋은 소리를 내려고 발성을 연구하여 좋은 소리를 실제로 지니지만, 음악이 지니는, 가사가 지니는 진실함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안타깝지만 ‘콘코네(Concone, 발성과 음악 표현을 위한 연습곡집)’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얼마 전,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눈물 흘리는 관객들을 보았다. 진실하게 부르는 유행가 가사가 사람을 울리는 것을 보며 느끼는 바가 컸다. 진실한 찬양을 할 때 너도나도 우는 것은 다름 아닌 가사의 힘이다.

기악은 성악처럼 들리는 가사를 가지고 연주하지 않기 때문에 영감을 전달하려면 더욱 집중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어찌 보면 성악보다 더 자유로운 상상력을 지니고 연주할 수 있다. 가사가 없는 곡이기에 자신의 마음을 자유로이 담아 표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넘치는 사랑, 기쁨, 슬픔을 표현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이 세상에 수많은 음악이 있지만, 그중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의 곡이 얼마나 될까? 직접적인 가사로 쓰인 성악곡이야 어쩔 수 없지만, 가사 없이 쓰인 기악곡은 내 맘대로 맘껏 찬양하며 연주하고 감상할 수 있으니, 남들이 뭐라 하든 내게는 기쁨이다.

지휘자의 아내로서, 남편이 하나님 찬양하는 곡만 연주했으면 하는 바람이 나름대로 이루어졌다. 실제로 지금 우리가 부르는 찬송가 중에는 유명한 클래식 곡조에 은혜로운 가사를 따로 붙인 곡도 많이 있다. 그러한 작업이 연주하고 감상하는 이들에게서 수시로 행해지고, 그것이 곧 찬양이 될 수 있음이 감사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27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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