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죽음이 지배하는 삶의 허무함

등록날짜 [ 2012-07-10 10:07:57 ]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벳 일대기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 깨닫게 해

19세기 오스트리아 황후 엘리자벳의 일대기를 그린 뮤지컬 ‘엘리자벳’은 1992년 9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초연한 지 5년 만에 공연 1000회를 돌파하고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기록을 세웠다. 또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헝가리, 일본 등 세계 10개 국가 전역에서 900만 명 이상이 관람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장 성공한 독일어권 뮤지컬로 꼽힌다.

‘엘리자벳’ 공연 20주년인 올해는 비엔나, 쾰른, 뮌헨 등 유럽 전역에서 순회공연을 하며 한국에서는 2월 8일 시사 공연을 시작으로 지방 공연이 계속 잇따르고 있다. 특히 제작 준비기간 7년, 참여 스태프 300여 명, 초호화 캐스팅과 당대 아이콘으로 통할 정도인 엘리자벳의 화려한 드레스와 유럽 최대 합스부르크 황실의 웅장함을 그대로 재현했으며, 리프트 3개와 이중회전무대 등 다양한 무대 연출로 공연 전부터 많은 사람의 기대를 모았다.

엘리자벳의 일생을 뮤지컬로 재탄생시킨 사람은 세계적인 극작가 미하엘 쿤체다. 파란만장한 황후의 일대기에 ‘죽음(독일어로 Tod)’이라는 캐릭터를 추가해 엘리자벳과 ‘죽음’이 나누는 사랑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 실베스터 르베이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음악이 어우러져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극은 어린 시절 나무에서 떨어진 엘리자벳이 죽음과 처음 마주하고, 죽음이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죽음은 엘리자벳 주변을 맴돌며 시어머니와 갈등을 유발하고, 자신의 의지와 자유를 박탈당한 황후라는 삶으로 고통받는 그녀에게 진정한 자유의 세계(죽음)로 끊임없이 유혹한다.

또 죽음은 엘리자벳을 얻으려고 그녀가 사랑하는 것들을 망가뜨리고 사람들 틈에 섞여 엘리자벳을 무너뜨릴 방법을 속삭이거나 그들의 계획에 맞장구를 친다. 엘리자벳은 삶에 강한 의지를 보이며 죽음의 유혹에서 번번이 벗어나지만, 무정부주의자 루케니에게 암살당할 때까지 환상을 보고 정신병자에게 위로받으며 죽은 사람들과 대화한다.

유전병인 정신병에 사로잡힐까 두려워하면서도 끊임없이 죽음의 유혹에 흔들린 것이다. 엘리자벳은 숨이 멎는 순간 검은 드레스를 벗고 흰 원피스를 입은 채 죽음에 달려간다. 죽음을 만난 후 입맞춤을 통해 죽음과 영원히 함께한다는 결말을 알리며 이 뮤지컬은 막을 내린다.

엘리자벳의 아들 루돌프 역시 외로움을 틈타고 다가선 죽음에 마음을 빼앗긴다. 죽음은 자신을 친구라고 속삭이며 루돌프의 약해진 마음을 파고든다. 결국, 죽음은 성인이 된 루돌프를 궁지로 몰아넣어 자살하게 하는데, 루돌프가 자살하는 장면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 무희들은 혼란스러운 춤으로 루돌프를 미치게 한 후 권총을 쥐여 주고 죽음의 키스와 함께 방아쇠를 당기게 한다.
 
또 엘리자벳이 “나의 주인은 나”라고 노래할 때, 죽음은 그녀가 “나”라고 말하는 부분마다 함께 노래한다.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의지를 밝히며 노래할 때도 죽음이 함께 노래하는데, 등장인물들의 삶과 생각마저도 죽음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쩌면 죽음이 그들에게 목소리를 내도록 지시한 것일 수도 있다.

뮤지컬 엘리자벳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를 그리고 있지만, 선하지 않은 악한 영의 존재를 ‘죽음’이라는 인물로 미화한다는 점에서 편하게 볼 작품은 아니다. 자살을 아름다운 의식으로 포장하는 것도 거슬린다.

하지만 기독교인으로서 죽음에 자신은 물론 환경까지 조작당하는 등장인물들을 보며 신앙생활을 추스르게 된다. 엘리자벳은 죽음을 부정했고 번번이 죽음의 유혹에서 벗어나지만 순간일 뿐, 죽음에 철저히 지배당하는 삶을 살았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악한 권세를 이기셨으니 자유로운 자요, 성령의 이끄심을 받는 자다.

오늘도 주님이 내 안에 계셔 진정한 자유를 누린다. 호화로운 궁정 생활과 유럽 곳곳을 유람하며 살았던 엘리자벳 황후와 비할 수 있을까.     

/김은혜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29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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