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07-24 13:50:25 ]
20세기 표현주의 화법의 절정, 뭉크의 <절규>
과장한 왜곡과 강렬한 색채로 인간 내면 표현
노르웨이 화가 에드바르 뭉크(Edvard Munch, 1863~1944)는 가난한 의사 집안 다섯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뭉크 나이 다섯 살 때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났고, 열네 살 때 누이 역시 같은 질병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 후에도 여동생이 정신병으로 입원했으며 남동생은 결혼 후 몇 달 만에 죽고 말았다.
뭉크 역시 항상 병약했기에 언제 닥쳐올지 모를 죽음의 공포가 그를 평생 따라다녔다. 뭉크는 유년 시절을 이렇게 고백했다. “내 요람을 지킨 것은 질병과 광기와 죽음이라는 검은 옷의 천사였다. 그들은 그 후에도 계속 내 삶에 달라붙어 떨어질 줄을 몰랐다.”
가정에 연이어 몰아닥친 질병과 죽음의 공포는 뭉크의 성장기에 큰 상처로 남았고, 결혼을 거부하고 평생 혼자 산 이유 중 하나인 여성 공포증도 어머니와 누이의 죽음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성장 과정이 죽음, 슬픔, 불안, 증오를 다룬 뭉크 작품의 지배적인 모티브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절규> <병든 아이> <불안> <죽음과 소녀> <자화상, 지옥에서> <흡혈귀> 등과 같이 절망과 어둠을 다룬 주요 작품에서 보듯이 뭉크는 그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트라우마(trauma, 외상 후 나타나는 스트레스 장애)를 삶과 죽음을 바탕으로 그려냈다.
그리고 수많은 그림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분출함으로써 끊임없이 내적 힐링(치유)을 시도하고 자신의 감정을 정화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80여 세까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며 장수를 누린 것을 보면 예술 활동이 상처투성이인 뭉크의 삶에 목적과 동기가 되어주었음을 알 수 있다.
뭉크는 자신이 경험한 불안, 공포, 고뇌, 애증과 같은 내면의 세계를 강렬한 색채와 왜곡한 형태를 사용하여 그림으로 표현하고자 했는데 이러한 독창적인 화풍은 20세기 표현주의에 큰 영향력을 미쳤다. 표현주의는 눈에 보이는 세계를 재현하는 사실주의와는 달리,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의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에 가치를 두었는데, 감정을 표현하려고 형태를 심하게 왜곡하거나 내면의 상태를 강한 색채로 과장해 표현하였다. 뭉크 외에도 반 고흐, 폴 고갱, 에밀 놀데, 조르주 루오, 키르히너, 바실리 칸딘스키는 표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다.
뭉크 작품 <절규>(1893년, 오슬로 국립미술관 소장, 91×73.5㎝)는 친구들과 산책을 하던 중에 생생하게 경험한 공포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 그의 일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다.
“친구 둘과 길을 걷고 있었다. 해는 막 지려 하고 하늘은 갑자기 핏빛으로 붉게 물들었다. 나는 너무나 피곤해서 멈춰서 가만히 서 있었다. 검푸른 피오르(협만, 峽灣)와 도시 너머로 불과 피 같은 혓바닥이 날름거렸다. 내 친구들은 계속 걸어갔으나 나는 혼자 남았다. 그때 나는 이유 모를 공포에 떨면서 자연의 커다란 절규를 들었다.”
<사진설명> 뭉크 작(作) <절규>(1893년, 오슬로 국립미술관 소장)(왼쪽). <골고다 언덕>(1900년 오슬로 국립미술관)(오른쪽).
핏빛 붉은 하늘과 굽이치는 강물의 선들은 불안한 상황을 화면 전체에 시각화했다. 과장한 원근법과 대담한 사선 구도로 표현한 다리는 불안감의 강도를 더욱 증폭하고 있으며 비명에 귀를 막고 서 있는 사람은 극도의 공포 상태에 빠져 있는 듯, 마치 죽음에 다다른 해골처럼 표현해 놓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태연히 걸어가는 두 사람에게서 보이는 이질감과 무서운 비명을 혼자 듣고 있는 고립감의 대비가 공포 상황을 최고점에 이르게 한다.
이 그림이 개인적인 경험에서 비롯한 작품임에도 세계적인 명작이 된 이유는 인간이 지닌 ‘공포’라는 보편적 감정을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뭉크를 그토록 공포에 떨게 한 절규는 어떤 것이었을까. 뭉크는 19세기 말 당시에 팽배한 세기말적 불안과 허무, 혼란과 고독으로 소외된 인류의 신음을 예지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뭉크의 영혼이 자신에게 절규하는 생명의 몸부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자에겐 절망 속에서도 피어나는 감사와 소망의 고백이 있다. 그것은 예수 피의 공로로 죄 사함 받고 구원 얻어 영원한 생명을 소유했기 때문이다. 예수만이 우리 삶의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신다. 예수가 없는 이 세상은 공허와 절망뿐이다. 세상 모든 사람에겐 예수가 필요하다.
/문준희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29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