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2-12-26 13:13:33 ]
프렌티스(E.P.Prentiss) 작사/ 도언(W.H.Doane) 작곡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이라는 찬송은 엘리자베스 페이슨 프렌티스(Elizabeth Payson Prentiss, 1818∼1878) 여사가 쓴 대표작 찬송 시 중 하나며, 작곡자 윌리엄 하워드 도언(William Howard Doane, 1832~1915)이 1870년에 펴낸 「헌신의 노래집」에 처음 실려 소개되었다.
프렌티스 여사는 27세 때 조지 루이스 프렌티스 목사와 결혼했다. 프렌티스 여사는 결혼한 지 11년 되던 해인 1856년, 무서운 전염병으로 두 자녀를 한꺼번에 잃었다. 평소 병마와 싸우던 프렌티 여사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시련일 수밖에 없었다. 평생 병약자로서 자신의 육체적 고통을 믿음의 힘으로 승리하는 것도 힘겨운 일이던 프레키스 여사에게 사랑하는 자식들을 잃은 슬픔은 진실로 감당하기 어려웠다.
자식을 잃은 슬픔
프렌티스 여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고 이해하려 하였으나,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토록 큰 고통을 당해야 할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하나님 딸로서 살아가면서 굳은 믿음으로 조금도 흔들림 없이 살아왔는데… 확고하며 독실한 신앙 가정에서 자라나서 내가 가진 소중한 사랑과 충성으로 하나님을 따르고 봉사하며 사랑이 넘치는 크리스천 가정을 꾸려 나가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란 말인가?’
남편이 교회 목사이고 신학자여서 평생 주의 일만 하는 종이었으며, 더욱이 프렌티스 여사의 부친은 성자같이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여 많은 이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이 부족하여 이런 고통과 아픔을 당해야 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프렌티스 여사는, 자신이 걸어온 과거를 보나 현재 신앙생활을 보아 다른 사람에게 그런 어려움이 닥칠지라도 최소한 자신의 가정만큼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리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철석같이 하나님을 믿었는데, 그런 어려움을 당하고 보니 배신당한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프렌티스 여사는 몇 주 동안 도저히 위안받을 곳이 없어서 의기소침해 있었다. 교회 성도가 찾아와 온갖 정성을 다해 위로해주고, 식사 준비하는 일과 집안일까지 돌봐주었다. 그러나 프렌티스 여사는 도저히 큰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 날이 하루하루 계속됐다.
어느 날, 프렌티스 목사 부부는 아이들의 묘에 다녀왔다. 그리고 그날 저녁 프렌티스 여사는 남편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여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한단 말입니까? 가정이라는 배는 파선에 이르렀고 희망은 여지없이 산산조각 났으며, 우리의 모든 꿈은 다 수포로 돌아갔는데 그저 묵묵히 앉아서 비관만 하고 있으란 말입니까?”
남편인 프렌티스 목사는 자신의 슬픔을 뒷전에 둔 채 “이번이 우리가 오랫동안 설교하고 가르치며 서로 믿어온 바를 실생활에서 나타내는 좋은 기회가 아니겠소?” 하고 대답했다. 이어 “하나님은 어려움에 직면해 낙심해 있을 때 우리를 더 사랑하고 계시다고 하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마치 우리 어린 자식들이 아프거나 괴로움과 번민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더 측은히 여기고 더 사랑하게 되듯 말이에요. 예수께서는 ‘세상에는 환난이 있으나 기운을 내고 용기를 지녀야 한다. 내가 환난을 이겼노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소? 하나님이 우리를 징계하시려고 고난을 보내시는 것이 아니며, 주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려고 연단하시는 것으로 생각해요. 그러니 이 기회가 우리에게는 좀 더 하나님께 가까이 갈 좋은 기회가 아니겠소?” 프렌티스 목사는 이렇게 아내를 조용히 타일렀다.
아이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 아픔을 이겨 내지 못하는 아내를 위로해야 하는 그 괴로움, 꼭 같이 슬픔을 당한 성도에게 위안을 주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이기게 이끌어 줘야 하는 목자로서 고달픔, 찢어지는 듯한 아픔 속에서도 흐트러져서는 안 되는 하나님의 종으로서 태도, 이 모든 것이 남편의 어깨를 짓누를 것을 생각한 프렌티스 여사는 꿋꿋이 이 아픔을 이겨내는 남편을 볼 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윌리엄 도언이 완성한 곡
프렌티스 여사는 야곱이 그 쓸쓸하고 고독한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 새사람이 되어 새 출발 한 것 같은 경험이 자신의 경험이 되기를 바라며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랬더니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고 하나님을 원망하던 생각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자식을 잃고 몇 주간을 보내다가 주님의 말씀으로 귀한 위로를 받은 프렌티스 여사는 이 찬송 시를 써 나갔다.
“한 때 세상의 기쁨만 구했습니다. 그곳에서 평안과 쉼을 찾았나이다. 이제는 주님만 바라봅니다. 가장 선한 것을 주옵시고 바로 이것이 내 기도가 되게 하소서.” 이렇게 시 4절을 놓고 13년간 묻어 두었다. 1869년 남편 프렌티스 목사가 부인이 써 둔 이 시를 처음 발견하고 13년 전 자녀를 잃은 슬픔을 딛고 지은 시인 것을 알고 깊이 감동했다. 그 후 이 찬송 시가 여기저기에 소개됐는데, 윌리엄 도언이 한 팸플릿에 실린 이 찬송 시를 읽고 크게 감동했고, 읽은 바로 그 자리에서 작곡을 끝냈다고 한다. 찬송 시는 4절로 되어 있는데 우리 찬송가에는 3절이 빠지고 1,2,4절만 의역되어 실려 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아픔이 있다고 하지만, 전쟁과 자연재해 또는 질병 등으로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아픈 마음을 따를 것이 있을까? 이 찬송 2절 가사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전에 세상 낙 기뻤어도 지금 내 기쁨은 오직 예수” 자식을 잃고 그 아픔을 참아 내며 주님께 고백하며 일어서는 부모의 마음을 상상하며 이 찬송을 불러보자.
위 글은 교회신문 <31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