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찬송가 탄생 비화④] 자식 잃은 아픔을 승화한 곡

등록날짜 [ 2013-01-02 09:06:01 ]

슈몰크(B.Schmolck) 작사/ 베버(C.M. von Weber)작곡

유럽에서 신.구교 간에 벌인 30년 종교전쟁(1618~1648)이 양자에게 모두 엄청난 인명과 재산 피해를 가져왔다. 결국 잿더미 위에서 1648년 웨스트팔리아 평화조약을 체결했으나 신교와 구교의 대립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유럽 여러 나라의 전쟁터가 된 독일은 1600만 명이나 되던 인구가 600만 명으로 줄었고, 산업시설은 물론 삶의 터전도 모두 잿더미로 변했으며, 전쟁에서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마저 흑사병 같은 전염병이 기다렸다는 듯이 목숨을 앗아가며 참으로 죽음이 횡횡하는 무서운 곳으로 변했다.

<사진설명> 벤저민 슈몰크 목사

이 찬송의 작시자 벤저민 슈몰크(Benjamin Schmolck, 1672~1737) 목사가 시무하던 실레지아는 가장 치열했던 격전지 중 하나로, 전후에 닥쳐온 고통이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평화조약에 따라 루터교는 도심지에 교회를 세울 수 없었다. 교회는 성 밖에만 세울 수 있되, 로마가톨릭교회 신부가 승낙하지 않으면 그 지방 환자를 방문할 수도, 장례식을 치를 수도 없을 정도로 많은 제재를 받았다.

슈몰크 목사는 전도사 2명과 함께 대단히 어려운 목회 생활을 했다. 이들은 서른여섯 마을이나 되는 광활한 교구를 담당했는데, 그마저도 가톨릭 신부들의 눈치를 살펴가며 돌봐야 했다. 아버지도 루터파 목사였으니, 슈몰크 목사는 대를 이어 목회 길을 걷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사고를 맞게 되다
슈몰크 목사 부부가 성도들을 위해 심방을 나가면 구역이 넓고 특별한 교통수단이 없어서 온종일 걸려 깊은 밤중에 돌아오는 일이 빈번했고, 때때로 며칠씩 집을 비우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불쌍하고 안타깝게도 집에는 어린 자녀 둘만 남아 있었다.

1704년 어느 날, 슈몰크 목사 부부가 지친 몸으로 심방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 아닌가! 집이 화재로 숯덩이처럼 다 타 버리고 형체조차 제대로 남아 있지 않았다. 집이 다 타 버린 것도 큰일이지만, 도대체 집에 남겨놓은 두 아들은 어떻게 됐단 말인가! 부부는 정신을 가다듬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주위 성도와 함께 그 폐허가 된 잿더미를 파헤치며 제발 아이들이 집에 있지 않고 어딘가 밖에 나가 있었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이내 부부의 바람과는 달리 그 잿더미 속에서 처참하게 불에 타 죽은 채로 나란히 누워 있는 어린 아들 형제를 발견하고야 말았다. 주위에서는 충격으로 비명을 질렀고, 여기저기서 오열이 터져 나왔다. 충격을 받은 슈몰크 목사 부부는 정신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가 한참 후에야 성도들의 안타까운 울부짖음 속에 희미한 기운으로 깨어났다.

부부는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멍하니 있었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은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이들의 해맑던 모습을 떠올리니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밀려들고, 이내 두 부부는 자식들을 잃은 아픔에 통곡했다.

슈몰크 목사는 하나님께 이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고 울부짖었다. 부인의 입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며 탄식하는 소리가 계속 흘러나왔다.

며칠이 지나도 마음을 추스르기 어려웠고,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식사를 할 수도 없었다. 허탈감으로 주의 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죽은 아이들만 생각하면 그냥 눈물만 쏟아졌다. 안심되지 않아 슈몰크 목사 부부를 찾아오는 성도의 위로도 들리지 않고, 심지어 아내는 “하나님은 계시지 않아요! 살아계신다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어요!”라고 울부짖었고, 슈몰크 목사는 뭐라고 아내에게 대답할 힘도 없었다. 또 며칠이 지나자 아내는 주변 성도에게 집에 찾아올 필요가 없으니 오지 말라는 이야기까지 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보다
잿더미가 된 교회 예배당 바닥에 앉아 있던 슈몰크 목사는, 이제 교회 문도 닫고, 더는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운 목회자의 사명을 다 내려놓는 것이 맞는지 아닌지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슈몰크 목사는 하나님께 이 견디기 어려운 현실에 대해 묻고자 자신의 마지막 기도라는 마음으로 무릎 꿇고 엎드렸다.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울부짖는 소리로 기도했다. 얼마나 긴 시간이 지났을까? 슈몰크 목사가 절규하던 목소리도 점차 잦아들고 묵상 기도로 하나님과 단둘만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때, 하나님이 보여 주신 어떤 장면 하나가 슈몰크 목사 눈앞에 펼쳐졌다. 갈보리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정확하고 뚜렷하게 보이는 것이 아닌가!

슈몰크 목사는 오열하며 하나님께 매달렸다. 예수께서 피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시는 것처럼, 슈몰크 목사 자신도 같은 기도를 쏟아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긴 기도 끝에 하나님께서는 슈몰크 목사에게 새 마음을 주셨고, 기도를 마치자 슈몰크 목사는 불쌍하게 집을 지키던 착한 아이들을 하나님께서 주의 나라로 친히 데려가셔서 잘 돌보아 주고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슈몰크 목사는 새 마음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이전보다 더 뜨거운 열정으로 감당했다. 후에 그날 기도한 내용을 요약해 두었는데, 그 기도 내용을 그대로 담은 것이 바로 찬송가 431장 ‘내 주여 뜻대로’다.

많은 어려운 일을 감당하던 슈몰크 목사는 1730년 사순절 주일에 과로로 쓰러져서 중풍으로 한동안 투병했다. 슈몰크 목사는 어느 정도 회복한 후에도 오른손을 쓰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백내장으로 고생하다가 수술을 몇 번이나 받았으나 실명하고 말았다. 결국 힘든 투병 생활 끝에 1737년 2월 12일, 65세에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 

위 글은 교회신문 <31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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