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찬송가 탄생 비화 6] 사랑하는 여인을 두 명이나 잃은 후 쓴 글

등록날짜 [ 2013-01-15 11:23:16 ]

결혼을 약속한 여인마다 뜻하지 않게 죽음 맞아
어머니 중병을 간호하며 고백과 같은 가사 담아

조셉 스크라이븐(Joseph Medlicott Scriven, 1819 ~1886년)은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비교적 평탄한 성장 과정을 거쳤다. 청년이 되었을 때, 스크라이븐은 군인 가문의 전통을 따라 직업군인이 되려고 했지만, 허약한 체질과 쉽게 지치는 체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명문 신학대학교에 입학하여 문학을 전공했고, 이 기간에 복음을 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결혼식 전날 겪은 불행
대학을 졸업한 후, 교직에서 학생들에게 문학을 가르쳤다. 스크라이븐이 교직 생활을 하던 중, 그의 마음을 빼앗은 여인이 나타났는데, 그의 적극적인 구애 끝에 마침내 결혼을 약속했다. 마침내 결혼식 날이 다가오자 친정 부모님께 마지막 인사를 드리려고 자신의 집에 들렀던 약혼녀가 결혼식 전날 스크라이븐의 마을로 돌아오고 있었다.

약혼녀 역시 착한 남편과 꾸려갈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말을 타고 오는 중이었다. 스크라이븐도 들뜬 마음에 집에 있을 수 없어 이제나저제나 하는 마음으로 강 건너편까지 나와서 그녀를 기다렸다. 드디어 멀리 말을 타고 오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고, 마을 친구들까지 따라 나와서 그녀에게 소리를 지르고 마을 사람 모두 그녀를 환영하는 분위기로 동네가 시끌시끌했다. 그러나 말을 타고 다리를 건너던 그녀가 다리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였다. 말이 갑자기 다리를 헛디뎌 미끄러지면서 펄쩍 몸을 세우는 것이 아닌가? 말고삐를 제대로 잡고 있지 않던 그녀는 그만 강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나마 그녀가 물에 빠졌으면 다행이었을 텐데 불행하게도 강에 있던 큰 바위에 떨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쳤고 그만 의식을 잃고는 물에 빠져 손짓 한번 못하고 그대로 익사하고 말았다.

스크라이븐은 사고가 나는 동안 손 한번 제대로 써 볼 틈도 없이 강 건너편에서 멍하니 지켜봐야만 했다. 스크라이븐은 망연자실 털썩 주저앉았고, 마을 사람들은 힘을 모아 그녀의 시신을 건져 수습했지만, 이미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스크라이븐은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 슬픔에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

스크라이븐은 이후 식음을 전폐한 채 ‘하나님은 도대체 무엇을 하시는 분인데, 하나뿐인 약혼녀를 지켜주지 않으셨는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스크라이븐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을 비롯한 그의 주변 모든 사람에게 이 일은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흘러 스크라이븐은 자기 자아에 관한 깊은 고민에 빠졌고, 위로를 받더라도 이 마을에서 떠나 다른 곳에 가서 받으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이 일은 스크라이븐이 ‘폴리마우스 브레드런’이라는 신앙 공동체에 깊이 의탁하는 계기가 되었다.

뜻하지 않은 두 번째 불행
스크라이븐은 슬픔을 잊으려고 스물다섯 살 때인 1844년 캐나다로 이민했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에 정착한 스크라이븐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 재산을 나누어 주고 무보수로 목공 일을 하며 빈민가를 수리해 주었다.

세월이 흘러 나이 서른여섯 살이던 1855년, 스크라이븐에게 다시 사랑이 찾아왔다. 기대하지도 않았고 그럴 자신도 없었는데, 첫사랑 못지않은 불꽃 같은 사랑에 빠진 스크라이븐은 캐서린 로체라는 여인과 약혼했다. 결혼하기 전, 캐서린은 침례를 받기로 했다. 보리 추수가 끝난 계절이어서 날씨가 제법 추웠다. 캐서린은 몸이 아파서 쇠잔한 상태라 걱정됐지만, 어차피 받을 침례라면 빨리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캐서린이 침례를 받은 후 갑자기 몸에서 한기가 돌고 여기저기 아프더니 상태는 점점 나빠졌다. 캐서린은 불행하게도 폐렴에 걸리고 만 것이었다. 스크라이븐은 결혼식을 연기하고 극진히 간호하며 캐서린이 건강을 찾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스크라이븐의 눈물겨운 정성에도 불구하고 4개월 만에 캐서린은 약혼자를 남기고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스크라이븐은 이제 주님을 제외하고 그 어디에서도 위로를 받지 못하였다.

이런 힘든 비극 속에서 아일랜드에 있는 어머니가 중병에 걸렸다는 소식이 왔다.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절망과 근심이 밀려오자 스크라이븐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긴 기도 후에 병환 중인 어머니께 위로의 편지를 썼고, 이 편지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 번씩이나 잃은 스크라이븐이 예수께 받은 위로를 간증한 것은 물론, 자신이 곁에 없지만 어머니가 기도로 병과 근심에서 벗어나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내용이었다. 이 글이 후에 ‘죄 짐 맡은 우리 구주’의 찬송 가사 1절과 2절이 되었다.

견디기 어려운 시련에도 스크라이븐은 독신으로 살며 작은 교회 목회자로서 전도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모든 재산을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늘 남루한 차림으로 오직 전도에 힘썼다. 그러한 이유로 많은 사람에게 심한 조롱과 업신여김을 당했고, 심지어 전도 중에 경찰에게 연행되기도 했다. 스크라이븐은 늘 톱을 들고 다니며 힘이 없는 노인들을 위해 열심히 장작을 만들어서 집집이 갖다 주는 생활을 했는데, 정말 온몸과 정성을 다해 헌신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았다. 이러한 생활 속에서도 매일 기도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어머니를 위해 쓴 편지는 1855년에 썼고, 그로부터 3년 뒤쯤 3절을 완성한 것으로 보이며, 이 전체 가사는 스크라이븐의 생애 말년에 그의 병상에서 발견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스크라이븐은 1876년 쉰일곱 살 때 포터라는 여인과 결혼했고, 그녀는 생애 마지막 10년을 병상에서 보낸 스크라이븐을 곁에서 지켜 주었다.


조셉 스크라이븐

위 글은 교회신문 <32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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