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2-05 10:13:29 ]
기존 장·단조 화성체계를 벗어난 다양한 형태 많아
획기적이고 파격적인 음악성향 앞으로도 계속될 듯
문학과 미술처럼 음악에도 시대에 따른 사조가 있다. 여러 가지 역사적 상황과 시대상을 직간접으로 반영하며 예술은 현실을 노래한다. 찬양받으시려고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 창조 이래 지금까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사람들은 음악을 만들어 찬양한다.
인간 창조 이전, 천사가 부른 찬양 소리는 어땠을까?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께 어떤 찬양을 올려 드렸을까? 시편 150편들은 어떠한 곡조에 맞춰 불렀을까? 성경 인물 중 누가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양하였을까? 다윗이 찬양대 4000명으로 주님께 영광 돌렸을 때, 그 소리는 어떠했을까?
여러 가지 궁금증이 때로는 창작의 영감이 되기도 한다.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에서는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으며 부르는 노래, 아담과 하와가 함께 부르는 아름다운 이중창 등을 들을 수 있다.
우리나라 전통음악이 서양음악과 차이가 큰 것처럼, 서양음악 자체도 예전 음악과 현재 음악 사이에 차이가 크다. 지금 보편적으로 듣는 화성체계를 갖춘 서양음악이 완전히 정립된 것은 사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소위 클래식 음악으로 총칭하는 서양 고전 음악은, 바흐 시대(1700년 이후)부터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이 활동하던 고전 시대를 거쳐 슈베르트, 슈만, 쇼팽, 리스트, 차이콥스키 등이 주류를 이루던 낭만 시대(1900년 이전)까지가 감상 범주에 속한다. 말하자면, 음악 세계는 200년 정도를 장.단조 화성체계가 지배했다. 그래서 현재 동서양을 막론하고 ‘음악’ 하면 장.단조 체계 음악만을 생각하는 이가 대부분이 되었다.
그러나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작곡가들은 앞다투어 이러한 장·단조 체계 음악을 지양하며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려 노력한다. 이른바 20세기 음악, 현대음악으로 부르는 것으로, 대표적인 작곡가로는 12음 기법을 선보인 쇤베르크 등을 꼽을 수 있다. 예측할 수 있는 식상한 진행과 19세기 말 팽배하던 만연체인 낭만음악에 대한 반작용으로 만들어졌으나 소수 지지자에 의해 그 명맥을 유지해 온 현대음악이, 이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게 됐다.
<사진설명> 존 케이지의 <4분 33초>라는 작품은 연주자가 등장하여 무대 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 사이에 일어나는 관객의 반응과 소리 자체를 감상하는 작품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발전해 온 이 새로운 음악은, 결국은 획기적이면서 보편적인 룰을 찾지 못했다. 다른 예술사와 마찬가지로,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말미암아 현대음악 사조에도 변화가 거듭됐다. 수많은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존 케이지의 <4분 33초>라는 작품은 침묵이라는 가장 역설적인 방법으로 성공을 거뒀다. 연주자가 등장하여 무대 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그 사이에 일어나는 관객들의 반응과 소리 자체를 감상하는 작품이다. 한두 가지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최근 100년간 현대음악계에서는 수많은 시도가 계속되었다. 그런데도 100년 역사가 무색할 만큼 대중과 교류를 나누지 못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대중성과 예술성을 인정받아 연주되는 20세기 음악 레퍼토리가 존재한다.
현재 유럽에서는 독일, 프랑스를 중심으로 계속해서 활발한 창작 예술 활동이 장려되고 많은 관심 속에 새로운 음악이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몇 작곡가가 세계 중심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말미암아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도 관심사가 다르고,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한다. 지금을 살아가는 작곡가들은 청중이 이해하지 못하는 정신세계에 가치를 두고 예술 활동을 할 때 갈채와 반응을 넘어 자신이 확신하는 예술적 가치에 인생을 투자한다. 예술의 절대적 가치에 들어맞을 때 비로소 그 음악은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걸작이 된다. 같은 음악가들조차도 때로는 그 음악을 이해하지 못해 비난이 잇따르기도 한다. 하지만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 하더라도 자신의 믿음과 정신세계의 작용이 가치를 창조해 낸다. 새로운 아름다움을 개척해 나가는 선구자가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알지 못하나 내가 알고 있는 확실한 것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는 작곡가들의 삶의 모습이, 어딘가 크리스천과 닮은 데가 있는 듯하다. 계속 정진하여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아름다운 천국을 알리는, 인생을 작곡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추은희 집사
작곡가, 연세대 강사
위 글은 교회신문 <32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