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3-05 13:58:15 ]
에드워드 모트(E. Mote) 작사/윌리엄 브래드버리(W.B. Bradbury) 작곡
<사진설명> 에드워드 모트.
시인이며 목사인 에드워드 모트(Edward Mote, 1797~1874)는 1797년 1월 21에 영국 런던에서 선술집을 운영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하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방황하던 소년이 목공이 되다
에드워드가 자라난 환경은 이렇다고 말할 것이 없을 정도로 험악했다. 가난해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게다가 집이 선술집이다 보니 늘 술에 취한 거친 사람들 속에서 욕설과 싸움이 난무한 중에 성장했다. 그러한 이유로 어린 소년은 집에 있기 싫어하고, 누구도 돌보지 않아 늘 길에서 떠도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이로 말미암아 생긴 열등감과 반항심으로 길거리를 헤매며 나쁜 일에 휘말리고 폭력을 일삼았다. 원망과 불평이 가득 찬 에드워드에게는 세상 어디에도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대해주고 조언해 줄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에드워드에게는 뛰어난 손재주가 있었다. 16세가 되었을 때 돈을 벌려고 가구 공장에서 목공 일을 시작했다. 다행히 그 가구 공장 주인아저씨는 자식을 돌보듯 에드워드를 눈여겨보고 따뜻한 관심을 보였다. 이제껏 거칠게 살아온 에드워드의 마음도 조금씩 열렸다.
어느 날, 주인아저씨는 자신과 함께 교회에 가보지 않겠느냐며 에드워드를 교회로 데리고 갔다. 에드워드는 지금껏 교회에 관심도 없고 자기가 교회에 간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만,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 주는 주인아저씨의 권유를 뿌리치기는 어려웠다.
그날 예배 설교는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주제였는데, 낯선 분위기에 몸을 뒤척이던 에드워드는 순간순간 귀에 들어오는 설교 말씀이 점차 자신을 향한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어 예배에 집중했다. 설교가 끝난 뒤 마음이 뭉클해졌고, 자신의 메마른 가슴이 말씀으로 녹아들어 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감정을 주인아저씨에게 이야기하였고, 아저씨의 도움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했다.
영접과 함께 새 삶이 시작되다
그날 이후 에드워드는 진정 행복한 목공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에드워드의 고백처럼 가구를 만드는 도구에서 나는 모든 소리가 노래하는 듯 즐거웠다. 그렇게 에드워드는 신이 나서 성실히 일하며, 주인아저씨를 따라 전도도 하고 틈틈이 시도 쓰며 생활했다.
에드워드는 가구를 만드는 솜씨로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고, 주인아저씨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세월이 지나자 가구 만드는 일이 점점 번창했고, 주인아저씨가 에드워드의 이름으로 가구점을 열어 주었다. 에드워드는 제법 규모가 큰 가구점을 운영하여 여유가 생기자 정식으로 신학을 공부하였다. 뒤늦게 공부를 시작했지만, 자신의 어릴 적 모습과 생활을 생각하면 이렇게 신학공부를 하게 된 사실이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에드워드는 열심히 신학을 공부하여 55세인 1852년 침례교 목사가 되었고, 22년간 영국 서식스 주 호셤(Horsham, Sussex)에서 목회하였다. 목사가 된 후에 에드워드는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전 재산을 온전히 다 바쳐 교회를 건축하였다. 교회 건물이 완공되었을 때 교인들이 감사의 표시로 교회 소유권 문서를 전달하려 했지만, 에드워드는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교회 건물을 소유할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그저 네모난 설교단만 있으면 됩니다. 만약 내가 몸이 쇠약해 더는 그리스도를 전할 수 없게 되면 나를 강단에서 끌어내려 주십시오.”
목공 시절, 가구 공장 뒤편에 있는 언덕에 올라가 매일 기도하고 묵상하던 에드워드가 37세인 1834년 언덕 바위를 보며 지은 시가 바로 찬송가 ‘이 몸의 소망 무엔가’다.
부모뿐만 아니라 세상 누구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했던 에드워드는 가구 공장 주인아저씨의 인도로 새 삶을 찾았고, 누구보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사랑하고 계심을 깨닫게 되어 기쁨의 찬양을 했다. 에드워드의 고백은 찬송가 539장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328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