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4-23 10:43:44 ]
새바인 베어링 굴드(S. Baring Gould) 작사/ 아서 설리번 작곡(A.S. Sullivan) 작곡
<사진설명> 새바인 베어링 굴드.
찬송을 작사한 새바인 베어링 굴드(Sabine Baring-Gould, 1834~1924) 목사는 1834년 1월 28일 영국 엑서터(Exeter)에서 태어났고, 독일과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한 후 영국 케임브리지 클레어 대학(Clare College)을 졸업하였다.
베어링 굴드 목사는 전통 있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덕분에 어려서부터 좋은 환경에서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6개 국어에 능통했고, 철학을 공부하다가 신학에 관심이 생겨 정식으로 신학을 공부한 후 30세에 목사가 되어 영국 요크셔, 엑서터 등지에서 목회했다.
어린이들을 사랑한 베어링 굴드 목사
워낙 지식이 풍부했던 그는 목회자로서뿐만 아니라 훗날 훌륭한 학자와 철학가로도 인정받았고, 90세로 삶을 마감할 때까지 100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 베어링 굴드 목사는 다양한 지식을 바탕으로 누구든지 알아듣기 쉽게 설교하기로 유명했다. 특히나 어린이들이 쉽게 성경 말씀에 친숙해지도록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설교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요크셔에 있는 호버리(Hobury)라는 작은 마을에서 목회할 때에는 주일학교가 크게 부흥하여 매년 등록하는 어린이들이 늘어났다. 베어링 굴드 목사는 어린이들이 재밌게 참여할 수 있는 주일학교 프로그램을 항상 연구했고, 교사들도 그가 개발한 프로그램을 좋아해서 적극 참여했다.
베어링 굴드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서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즐거웠고, 아이들을 사랑하고 헌신할 때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하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런 그에게도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숙제가 있었으니, 바로 어린이들이 부르기 좋은 찬양곡이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어른들이 부를 찬양곡은 많았지만 어린이들이 부르기에는 가사가 어려웠다.
1864년 성령강림주일 후 첫 월요일에 모든 교회가 참여하는 축제가 있었다. 베어링 굴드 목사의 교회를 비롯해 요크셔에 있는 여러 교회가 참여했다. 이 행사에서 어린이들은 흰옷을 입고, 십자가와 깃발을 흔들며 행진한다. 베어링 굴드 목사가 담임하는 주일학교 어린이들도 이웃 마을까지 행진을 선보이기로 했다.
그는 아이들이 행진할 때 힘차게 부를 찬송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런저런 찬송을 찾아보았지만, 딱히 마음에 드는 찬송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찬송을 직접 만들기로 했는데, 며칠이 지나도 가사가 떠오르지 않았다.
베어링 굴드 목사는 “주님! 어린이들이 부를 씩씩하고 힘찬 찬송을 주시옵소서!” 하며 기도하기 시작했고, “제 능력과 재능으로 찬송을 만들게 마옵시고, 주님께서 제게 직접 알려 주시옵소서!”라고 주님께 간구했다.
기도를 마친 그는 성경책을 펴놓고 주님이 주실 찬송을 기대하며 말씀을 묵상하고 있었다. 그때 말씀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큰 무리로 인하여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대하20:15).
베어링 굴드 목사는 이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는 무서울 것이 없고 오직 주만 따르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대장이신 예수께서 모든 전쟁에서 승리하신 기쁨을 찬양하여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행진하는 아이들 가슴에도 승리하는 기쁨과 감사를 안겨 주고자 찬송을 써 내려갔다. 가사를 완성한 다음에는 그 당시 누구에게나 친숙한 노래였던 ‘세인트 올번(St. Alban)’에 가사를 붙였다.
행사 날, 마을을 지나 초록빛 숲을 행진하는 어린이들은 ‘주님의 군대’라는 자부심에 기쁘고 즐거워서 목소리를 높였다. 행진에서 주님이 대장이신 것처럼, 앞으로 닥칠 인생의 어려움과 고난에서도 대장이신 주님이 싸워 이겨 주신다는 확신이 가득했다. 아이들을 뒤따라가는 베어링 굴드 목사의 가슴도 벅차올랐다. 어린이들을 주님처럼 섬기고 모든 힘을 다해 사랑을 쏟아붓는 그의 마음을 주님께서 아시고, 그 자리에 함께하고 계셨다.
설리반이 힘이 넘치는 곡을 붙이다
베어링 굴드 목사가 찬송을 만든 뒤 얼마 되지 않아 이 찬송이 <처치 타임즈(The Church Times)>라는 신문에도 실려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4년 뒤인 1868년 영국 찬송가에 정식으로 수록되었다.
1871년에는 영국 오페라 작곡가이자 교회 음악가로 유명한 아서 설리번(Arthur Seymour Sullivan, 1842~1900) 경이 우연히 이 가사를 보고 크게 감동해 곡을 만들었다.
아서 설리번은 가사에서 받은 감동을 그대로 담아 씩씩하고 힘이 넘치는 곡조를 붙였고, 1872년 영국 찬송가에 실려 현재 우리가 널리 부르는 찬송가가 되었다.
이 찬송은 1910년에 이미 100여 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1902년 베어드 선교사의 부인 안애리 여사가 한국어로 번역해서 우리나라에도 알려졌다.
위 글은 교회신문 <33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