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4-04-29 10:04:08 ]
‘미국식’ ‘독일식’ 등 현악기 자리에 따라 소리가 달라
오랜 세월 음향 시험을 거쳐 정착됐지만 정답은 없어
오케스트라 각 파트가 위치한 자리는 그 편성의 크기만큼이나 커다란 음향상의 효과를 가져온다. 각 오케스트라가 가진 독자적 전통에 따라, 작곡가의 국적과 시대에 따라, 지휘자의 의도에 따라 상이한 배치가 활용되지만 얼마간은 표준적인 ‘틀’이 존재한다. 오케스트라 연주와 악기에 친숙해질수록 작은 차이들이 눈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
때마다 다른 악기 배치에 숨은 비밀
음악회에 다니는 일이 익숙해지면 차츰 무대 위 악기들에 눈이 간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트럼펫, 달콤한 소리의 주인공 클라리넷, 무대 뒤를 둘러싼 든든한 더블베이스 악기의 생김새를 보며 그 소리를 익히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런데 곧 의문이 생긴다.
왜 오늘은 첼로가 안쪽으로 들어가 있지? 항상 무대 오른편 바깥쪽에 있던 첼로가 이번 음악회에서 안쪽으로 들어가 있다. 비올라가 있던 안쪽에 첼로가 있으니 왠지 어색하다.
오케스트라의 악기 배치는 왜 종종 바뀌는 걸까? 역사적으로 시대에 따라 나라의 관습에 따라, 때로는 지휘자의 판단에 따라서 악기 배치는 다를 수 있다.
사실 오케스트라의 악기 배치는 연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요소다.
악기를 어디에 놓느냐에 따라 음향 밸런스나 시각적인 효과가 매우 달라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국내 오케스트라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는 현악기군의 배치를 보면 객석에서 무대를 바라보았을 때 ‘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비올라-첼로’ 순으로 놓여 있고 첼로 뒤에 더블베이스가 버티고 있다<위 사진 참조>.
이런 배치는 미국식 배치로 불리며 미국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미국식 배치를 택하면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이 나란히 모여 있어 바이올린 그룹의 소리를 하나로 모으기가 쉽고 연주자들도 편안하게 연주할 수 있다.
하지만 단점도 있다. 첼로와 더블베이스의 소리가 다른 파트에 비해 약하게 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보완해 미국식 배치를 변형해 ‘제1바이올린-제2바이올린-첼로-비올라’ 순으로 놓기도 한다.
비올라를 무대 오른쪽 앞에 배치하고 첼로를 안쪽에 두면 첼로 소리가 좀 더 잘 들리고 평소 소리가 묻히던 비올라 선율이 전면으로 나와서 현악기 그룹의 소리가 입체적으로 다가온다.
‘미국식’ ‘독일식’ 정답은 없다
국내에서는 이런 미국식 배치가 대세지만 외국에서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간혹 독일 오케스트라나 러시아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에서는 조금 특이한 배치를 볼 수 있다.
제1바이올린 옆에 제2바이올린이 아닌 첼로가 자리 잡고 제2바이올린은 무대 오른편 앞쪽, 즉 본래 첼로가 있던 자리에 있다.
흔히 독일식 배치라 불리는 이런 배치는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이 마주 보는 형상이어서 두 악기 그룹이 서로 대화를 나누듯 주고받는 부분에서는 음향적으로나 시각적으로 그 효과가 뛰어나다.
그러나 연주자 입장에서는 다소 불편하다. 제1, 제2바이올린이 서로 비슷한 멜로디를 연주할 때 잘 듣고 맞추기가 어렵고, 제1바이올린 옆에 저음역의 첼로가 있는 것도 연주자들에겐 부담이다.
오케스트라의 제1바이올리니스트에겐 독일식 배치가 그다지 달갑지 않겠지만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무대 중앙 왼쪽에 버티고 있다는 것은 현악기군의 밸런스를 위해 매우 좋은 일이다.
그래서 간혹 저음현의 위력을 더욱 부각시키기 위해 전통적인 배치법을 응용한 색다른 자리 배치가 시도되기도 한다. 더블베이스를 무대 뒤쪽에 배치하는 것이다.
초기 오케스트라에서는 더블베이스가 무대 뒤쪽에 놓여 관객과 마주 보는 형태를 선호했는데 전통을 중요시하는 빈 필하모닉은 종종 이런 배치를 택해 더블베이스를 부각시킨다.
오케스트라의 악기 자리 배치는 오랜 세월 음향 시험을 거쳐 정착된 것이지만 이렇듯 오늘날까지도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더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해서다.
오케스트라의 여러 악기에 익숙해졌다면 이제는 자리 배치도 눈여겨보자. 작은 차이라도 소리에 대단히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으니 말이다.
/유민호
CTS 교향악단원
연세중앙교회 오케스트라
위 글은 교회신문 <38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