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입체주의 미술의 탄생, 피카소

등록날짜 [ 2014-08-12 13:21:10 ]

어릴 적부터 두각 나타내며 서양미술사에 큰 영향력 끼쳐

얼굴 표정보다 몸짓을 통해 작가가 의도한 메시지 전달해

 

스페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서양미술사에 획을 그으며 입체주의(Cubism, 큐비즘) 미술을 탄생시켰다.
 

피카소는 어려서부터 미술 분야에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다. 아홉 살 난 어린 피카소는 비둘기를 완벽하게 스케치해 미술 교사였던 그의 아버지를 놀라게 했고, 피카소가 열네 살 되던 해, 한 달에 걸쳐 그려야 완성되는 미술학교 입학 과제물을 단 하루 만에 완성하여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미술 신동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던 피카소는 이제 더 이상 어린아이처럼 미숙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어려워졌다. 피카소는 자신을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어린아이였을 때 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어린아이처럼 그림 그리는 법을 배우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피카소에 의해 탄생된 입체주의 미술은 사물을 보는 시각 전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기존 회화가 단일 시각에서 보여지는 사물의 모습을 그대로 화면에 옮겨 놓은 것에 불과했다면, 입체주의 미술은 사물의 옆모습과 뒷모습까지 한 화면에 표현해 여러 시각에서 느낄 수 있는 사물의 형태를 모두 담고자 했다. 왼쪽 시각에서 바라본 인물의 초상은 기존 회화 양식에서 왼쪽 모습만 묘사됐다. 그러나 피카소는 이면에 가려진 인물의 오른쪽 귀와 눈과 뺨까지도 한 화면에 그려 놓았다.


<게르니카>(피카소 作, 1937년)

입체주의 미술은 사물의 면을 해체해서 다시 조합하여 보여 주는 화법으로서 단일 시각에서 바라본 사물을 원근법을 사용해 입체감을 표현했던 회화의 전통 법칙을 단번에 무너뜨려 미술사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추상미술과 절대주의, 미래주의와 같은 20세기 현대미술과 조각, 건축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회화의 새로운 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피카소는 사물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여 표현하는 기존 미술의 한계에서 벗어나 상상과 경험에서 얻어진 모티브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했고 작가의 의식과 감정까지도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을 실험하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좋아했던 피카소는 그의 일생 동안 유화 1만 5000점, 판화 10만 점, 삽화 3만 4000점, 조각과 도자기 300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분량의 작품을 남겼으며 92세 나이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도 작품 활동은 계속되었다. 지칠 줄 모르는 창작 열기와 부단한 노력으로 만들어 낸 수많은 작품은 대중에게 폭발적인 인기와 사랑을 받았고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피카소는 엄청난 부와 명성을 누렸다.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피카소 作, 1930년)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는 피카소가 프랑스에 정착한 이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던 시기에 그린 작품이다. 가운데 십자가를 중심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 예수의 옆구리에 창을 대는 군인, 예수의 옷을 제비뽑는 로마 병사, 십자가 앞에서 통곡하는 막달라 마리아가 있다. 고통받는 십자가 앞에서 태연하게 예수의 옷을 제비뽑아 나눠 갖는 로마 병사들의 냉소적 태도와 죽음을 확인하려고 옆구리를 찔러 대는 군병의 잔인함을 나타냈다.
 

예수를 비롯해 등장하는 인물의 표정이나 얼굴에서는 그 의미와 내용을 알 수 없으나 행위와 몸짓을 통해 작가가 의도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이 그림은 예수 십자가의 고난과 인류 구원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인간 본성에 내재된 냉소와 무관심, 인간의 잔인함과 포악성을 더욱 부각해서 보여 주고 있다.
 

<게르니카>는 가로 7.8미터 세로 3.5미터의 거대한 캔버스에 전쟁의 비극을 묘사한 그림으로 스페인 북부지방 게르니카에서 발생한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 작품이다.
 

1937년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 장군을 지원한 독일 나치가 이 지역을 습격해 4시간 동안 폭격을 퍼부어 마을 전체가 파괴되었고, 인구 5000명 중 1654명이 사망했으며 889명이 부상했다. 모국에서 벌어진 참담한 소식에 분노한 피카소는 민간인의 억울한 죽음과 희생, 전쟁에 대항하는 그림을 제작했다.
 

칼을 움켜쥔 채 부러져 있는 팔, 죽은 아이를 끌어안고 통곡하는 여인의 절규, 암흑으로 변해 버린 도시의 창문 안으로 램프에 붉을 밝히는 여인의 손, 쓰러져 있는 군인, 창에 찔려 고통하는 말 등, 큐비즘에 의해 사물 해체로 조각난 이미지 표현이 폐허로 만든 전쟁의 잔인함을 더욱 고조시킨다. 화면 전체를 흰색과 검정색, 회색으로만 채색해 침통한 분위기를 더욱 강조했다.
 

이 그림은 잔악한 전쟁을 고발하고 생명 존중의 소중함을 가장 잘 표현한 희대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이 전시되는 곳마다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일깨워 주고 있어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관람자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고 있다.

/ 문준희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39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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