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5-28 14:24:53 ]
16세기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 作 『소년 예수와 율법학자』
예수의 가르침에 놀라기도 하며 반박도 하는 모습을 표현해
소년 예수는 남달리 총명하고 예리한 통찰력을 지녔다. 예수는 율법 자체에 매달리기보다는 율법을 꿰뚫어 보고 그 바탕이 되는 근본정신이 무엇인지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이를 알리려 했다.
“그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을 당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예수께서 열두 살 될 때에 저희가 이 절기의 전례를 좇아 올라갔다가 그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 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은 가로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양친이 그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모친은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누가복음 2장 41~50절).
<소년 예수와 율법학자>(알브레히트 뒤러, 1506년, 유채화,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소장). 사고의 유연함을 보여 주는 소년 예수의 손을 사고의 고집스러움을 보여 주는 주름진 율법학자의 손이 가로막으려 한다.
16세기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 <소년 예수와 율법학자>는 성전에서 소년 예수와 율법학자들 간에 논쟁하는 장면을 소재로 삼았다.
인물들의 배치를 순수한 미적 관심을 넘어서서 인물들 간의 필연적인 관계를 보여 준 것이다.
<소년 예수와 율법학자>에서도 그림 배경은 오로지 어둠으로 처리되었고 소년 예수를 둘러싼 율법학자 네 명이 서로 다른 주장을 드러낸다. 소년 예수는 늙은 율법학자들에게 손가락을 꼽아 가면서 자기 생각을 조목조목 펴고 있다.
오른쪽에 아주 비열하게 생긴 율법학자는 소년 예수의 손을 자기 손으로 막으면서 말을 끊으려 한다. 수염이 긴 율법학자는 자기주장을 고집하면서 모세의 율법책을 보라는 듯이 펴 보인다. 다만 왼쪽에 있는 율법학자는 소년 예수의 주장에 놀라 율법책을 덮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올려다보고 있다. 그의 모자에 붙인 네모 조각에는 성경 구절을 써 놓아 유대 교리를 굳게 지키고 있음을 나타낸다. 또 다른 율법학자는 예수의 주장이 못마땅해 어둠 뒤로 숨어들어 눈먼 영혼을 드러내고 있다.
뒤러는 일찍이 이탈리아 르네상스 회화를 깊이 체험하고 인체의 조형과 색채에 대한 감각을 비롯해 다양한 기법을 몸에 익혔다.
또 그는 종교개혁에 결정적인 영향을 받아 개성적인 표현 의지로 독자적인 화풍을 확립해 나갔다. 작품 구성 면에서도 가톨릭 계열의 작가와 구별되는 기독교의 개성을 보여 주었다.
그가 그린 <기도하는 손>은 지금까지도 많은 가정에 걸려 있을 만큼 기독교적 색채를 강하게 띤 그림이다.
소년 예수의 탄력 있는 손은 사고의 유연함을 드러내며 반면에 율법학자들의 주름진 손에는 긴장과 고집스러움이 배어 있다. 소년 예수의 온화하고 맑은 얼굴과 달리 세상의 온갖 때에 찌든 율법학자들의 얼굴에는 진리를 적대시하거나 배척하려는 표정이 매우 사실적이고 개성적으로 나타난다.
뒤러는 이러한 율법학자의 일그러진 표정에서 인간 내면에 숨은 편협하고 배타적인 정신을 날카롭게 들추어내고 있다.
정리 정재형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3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