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7-28 18:37:04 ]
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우리 인생처럼 힘든 산을 넘는 것
장거리 경주하는 선수처럼 천국 소망으로 끝까지 버텨야
#1. ‘음, 音, tone, Klang.’ 글자 형태나 읽는 소리는 다르지만 뜻은 ‘소리 나다’ ‘울리다’로 똑같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할 때에는 전투력을 고취하려고 북이나 나팔 같은 악기를 사용한다. 요즘도 시위나 데모할 때 활용한다. 특히 타악기는 쿵쾅거리는 심장 박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어 역동성을 더한다. 다시 말하자면, ‘음(音)’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역할을 한다. 하나님과 성령께서도 ‘말씀’이라는 ‘음’으로 사람의 마음을 울리셔서 움직이신다.
#2. 예전에 『성경으로 읽는 세계사』(김성일 著)란 책에서 언어학자들이 우리가 잘 아는 ‘바벨탑 사건’에 관해 내놓은 견해를 흥미롭게 읽었다. 그 연장선으로 현재 독일에 거주하다 보니 내 생활언어가 된 독일어 관점에서 어떤 두 단어를 분석해 보고자 한다.
독일 교회에는 목사님 ‘Pastor’와 음악을 담당하는 ‘Kantor’가 있다. 두 단어 뒤에 공통으로 붙은 ‘-tor’는 접미사로 쓰일 때 직업을 나타낸다. ‘Tor’가 독립된 단어로 쓰일 때는 ‘대문’, 또 어디를 향해 들어가는 ‘입구’를 뜻하며, 축구에서는 ‘골인’을 의미한다.
‘Pastor’와 ‘Kantor’는 바로 십자가 보혈의 은혜가 성소에 계신 여호와께로 인도하는 ‘Tor(입구)’가 아닌가! ‘Pastor’와 ‘Kantor’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 단어의 어원을 보며 이해할 수 있다.
#3. 지난번 기고(‘영혼의 때를 위하여’ 427호, 3월 21일 자)에서 독일에서 만난 이란인을 언급했다. 한국에 노무자로 일할 때 전도받아 연세중앙교회에서 예수를 믿었고, 한국어도 꽤 유창하게 하는 분이다. 그와 만난 일을 계기로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시고 부르신 이유와 하나님 안에서 나의 나 됨을 깨달았다. 또 찬양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본래의 뜻에 합당하고 은혜받은 자로서 우리 하나님을 향한 인격적인 의무라는 점도 깨달았다.
지난 1월, 내가 다니는 함부르크 루터 교회에서 악기 강습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독일 교인과 피난민(시리아,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이란 등에서 자유를 찾아 온 이들)이 언어 장벽을 넘어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하나 되기를 소망해서였다. 강습 악기는 내 전공인 플루트로 한국 연세중앙교회 서동범 성도가 후원했다.
독일 함부르크 루터 교회 플루트 강습회에서 만난 피난민 5명.
악기 강습 프로젝트는 사실 독일어를 읽지 못하는 피난민들에게는 따로 광고하지 못한 채 시작했지만,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정작 광고하여 초대한 독일 교인은 신청자가 없고, 피난민 5명이 수업 장소에 와 있었다. 주님의 혼인잔치 비유를 위로로 삼으며 5명으로 시작한 작은 겨자씨 찬양 사역이 어느덧 첫 열매 수확을 앞두고 있다. 찬양의 열매란 곧 ‘첫 연주’를 의미한다.
피난민들은 독일어에 서툴러 예배시간에 설교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찬양 가사를 몰라 예배 첫 시간부터 마지막 시간까지 소외됐다. 더군다나 전쟁과 열악한 환경으로 찬양이나 음악을 배워 본 적이 없었다. 이러한 피난민들이 처음으로 예배에 악기로 하나님께 찬양을 올려 드리는 것이다.
#4. 수업을 진행한 지난 7개월간 내가 얼마나 부족한 선생인지 알았다. 내게 맡겨 주신 5명 전원이 마지막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악기를 배운다는 것은 우리 인생처럼 힘든 산을 넘고 또 넘고 더 높은 산을 넘는 일인 듯하다. 나 자신도 날마다 발밑만 바라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지금도 못 넘을 듯한 산을 넘고 있다. 그러면서 지나온 발자취를 바라보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이처럼 신앙생활도 나 자신과 벌이는 싸움이다.
우리 연세중앙교회 오케스트라도 천국 소망을 지니고 장거리 경주하는 선수처럼 끝까지 승리하기를 멀리서나마 마음으로 응원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한희
플루티스트
독일 뮌헨 국립 음대 Meisterklasse 과정 졸업
카이저슬라우테른 오페라극장 수석
위 글은 교회신문 <444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