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친해지기] 진정한 후계자가 되기 위한 노력

등록날짜 [ 2015-09-01 14:30:26 ]

바흐, 베토벤과 함께 독일 3대 작곡가인 ‘요하네스 브람스’

두 거장을 뛰어넘기 위한 처절한 사투로 끝내 대작 만들어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년). 낭만 시대 독일 대표 작곡가.

 


독일에서는 ‘3B 작곡가’라 하여 바흐(Bach), 베토벤(Beethoven), 브람스(Brahms)를 자국이 자랑하는 클래식 음악 작곡가로 부른다. 이들은 각각 바로크, 고전, 낭만 시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불릴 정도로 시대를 풍미한 수많은 명곡을 세상에 남긴 대가들이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음악의 성인(聖人)’, 즉 악성(樂聖)으로 불리는 베토벤. 이 둘은 당대의 음악을 총망라함과 동시에 다음 세대의 음악을 미리 보여 주는 선구자로 추앙받았다. 그에 비해 브람스는 가장 늦은 낭만 시대에 살았으면서도 항상 과거를 향유하고 그리워하는, 때론 고집스럽게 전통을 중요시하고 지키려는 특징을 보였다.

 

그래서 브람스는 앞선 두 거장에 비해 음악사적으로는 조금 덜 추앙받는 면이 있다. 하지만 클래식 애호가들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두 가지 모습을 보이는 브람스와 그의 음악을 사랑한다.

 

브람스는 위대한 선배들이 축적해 온 교향곡, 협주곡, 가곡, 피아노 소나타를 자신의 시대에 맞게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어법으로 수놓았다. 극도로 소심한 그의 기질은 작품 하나하나를 쓸 때마다 신중에 신중을 가했고, 그리하여 타고난 성실함에도 그리 많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다. 예컨대 교향곡은 4곡에 불과하다.

 

브람스 생애에 항상 따라다니던 수식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위대한 베토벤의 후계자.’ 북독일 촌구석에서 상경한 젊은 브람스에게 이 말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분에 넘치는 칭찬이었다.

 

브람스가 20여 년 만에 1번 교향곡을 쓰고 발표했을 때, 사람들은 드디어 베토벤을 이을 정통 독일 작곡가가 등장했다며 좋아했고, 이 곡을 베토벤의 9번 교향곡을 이은 10번 교향곡이라 평했다. 내성적인 브람스는 사람들의 이런 칭찬에 기뻐하면서도 수줍어했다.

 

이어서 2번 교향곡을 썼다. 브람스 특유의 아주 부드럽고 따뜻한 선율이 돋보이는 훌륭한 곡이었다. 사람들은 이 곡이 “따뜻한 남쪽 나라의 햇살과 자연을 묘사한 듯하다”며 베토벤의 6번 교향곡 ‘전원’에 비교했다.

 

이때부터 어쩌면 베토벤이라는 존재는 브람스에게 넘어서야만 하는 산이 된 듯하다. 그의 의도와 상관없이 사람들은 그때까지도 베토벤과는 다른, 독창적인 그만의 음악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3번 교향곡을 썼다. 시작을 알리는 관악기 군(群)의 힘찬 서주에 이어 장조와 단조를 오가는 화성 변화와 강력한 듯하지만 부드럽고 우수에 젖은 듯한 주제 선율들이 이어지는 곡이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번엔 베토벤의 3번 교향곡 ‘영웅’과 비교하며 이 곡을 브람스의 ‘영웅’ 교향곡이라 부르려 했다. 사실 지금은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힘찬 서주 외에는 베토벤의 교향곡과 어느 한구석도 닮은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악장마다 힘없이 쓰러지는 듯한 모습과 그 유명한 3악장의 구슬픈 멜로디는 이젠 확연하게 브람스만의 색깔이 나오는데도 그저 쉽게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브람스의 곡을 베토벤과 엮으려 한다. 그가 그토록 닮고 싶어 한 베토벤. 하지만 이젠 브람스 본연의 음악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어 버렸다.

 

사람들은 브람스를 베토벤의 계승자라고 떠받들지만, 정작 그의 음악을 바흐와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독일 음악의 정수를 이어받은 후계자로서는 어딘가 부족하게 여긴다.

 

브람스는 다시 펜을 들고 교향곡을 썼다. 장고 끝에 그가 꺼내 든 비장의 카드는 바흐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바흐가 교회에서 쓴 수많은 선법과 푸가의 여러 기법, 거기에다 브람스의 정서가 듬뿍 담긴 우수에 가득 찬 선율과 세심하고 꼼꼼한 구성…. 드디어 그만의 색깔과 개성이 담긴 교향곡을 써 내려갔다. 무엇보다도 스스로 자신의 음악이 만족스러웠다.

 

브람스는 결국엔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이 가진 것들, 즉 자신의 경험, 생각,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할 때 비로소 그가 평생을 그토록 존경하고 사랑한 바흐와 베토벤을 잇는 진정한 독일음악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다.

 

자기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위대한 선배들이 축적한 기법과 특징을 바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자신만이 갖는 어법과 기법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요하네스 브람스는 과거 훌륭한 선배들이 닦아 놓은 터 위에서 자기만의 음악을 만들려고 했다. 기존의 틀을 깨부수고 다시 창조하지 않고 선배들이 이룬 업적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자기만의 색깔을 입혔다. 독일 작곡가를 대표하는 진정한 후계자였던 것이다.

윤승업

충남도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연세중앙교회 찬양대 상임지휘자
 

위 글은 교회신문 <449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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