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9-15 14:15:55 ]
프랑스 낭만파 작곡가 생상스가 만든 ‘동물의 사육제’
총 열네 악장으로 구성하여 재미와 섬세함이 돋보여
선선한 가을이다. 늦가을과 어울리는 고독하고 우수에 젖은 브람스 음악도 좋지만, 어린이들과 함께 들을 만한 청명한 가을 하늘 같은 곡을 하나 소개할까 한다.
프랑스의 낭만파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Sens, 1835~1892)가 1886년에 작곡한 ‘동물의 사육제’다. 14악장으로 구성된 관현악 모음곡이다. 사육제는 매년 2월 중·하순경에 유럽에서 열리는 대중적 축제로, 생상스는 흥겨운 축제에서 ‘동물의 사육제’를 작곡할 영감을 얻었다.
생상스는 총 14개 악장으로 온갖 동물을 표현했다. 각 곡의 내용을 이해하고 들으면 유머스럽고 섬세한 작곡가의 음악을 느낄 수 있다.
제1곡 ‘서주와 사자왕의 행진’-피아노 두 대와 현악 5부 편성. 서주에서 피아노의 부산한 연타와 현악기의 위협적인 저음이 크레센도로 연주된다. 피아노가 당당한 행진곡 리듬을 연주하면 여섯 번째 마디부터 현악 합주가 묵직하게 등장해 사자왕의 등장을 알린다. 위엄을 띠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우스꽝스럽다. 행진곡 리듬의 간주 뒤에 주제를 세 번 반복하면서 셋잇단음 음형이 출현하는데 이것은 사자왕이 으르렁거리는 소리다.
제2곡 ‘암탉과 수탉’-클라리넷과 피아노 두 대, 바이올린, 비올라로 편성. 곡 전체가 서른다섯 마디에 불과한 소품이다. 피아노가 수탉을, 클라리넷이 암탉을 묘사하고 두 마리가 홰를 치며 다투는 듯한 분위기를 잘 살렸다.
제3곡 ‘당나귀’-피아노 두 대로만 연주한다. 길들여지지 않은 당나귀의 분방한 움직임을 16분음표만 사용해 오르락내리락하는 악상으로 묘사했다.
제4곡 ‘거북이’-제1피아노와 현악 5부 편성. 겨우 스물두 마디짜리 소품이다. 오펜바흐의 오페레타 ‘천국과 지옥’의 캉캉 선율을 인용했고, 원곡은 눈이 돌아갈 만큼 빠른 곡이다. 이런 곡을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연주해 색다른 느낌을 자아냈다는 데서 생상스의 재치가 엿보인다.
제5곡 ‘코끼리’-제2피아노와 더블베이스로 편성. 거대한 코끼리가 왈츠 리듬에 맞춰 춤을 춘다. 이 곡 역시 패러디를 사용한다.
제6곡 ‘캥거루’-피아노 두 대로만 연주하고 전체 열아홉 마디다. 독특한 리듬이 뒷다리로 뛰어다니는 캥거루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템포와 강약의 변화, 4박자와 3박자의 절묘한 교차가 이 효과를 더욱 강조한다.
제7곡 ‘수족관’-플루트, 하모늄, 피아노 두 대, 첼레스타, 현악 4부 편성.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들의 나긋나긋한 움직임을 첼레스타의 영롱한 선율로 묘사한다.
제8곡 ‘귀가 긴 등장인물’-바이올린 두 대로 연주한다. 전체 스물여섯 마디이고 템포가 자유롭다. 매우 단순하고, 서로 겹치지 않는 두 음형을 고음역과 저음역으로 나누어 연주한다. 여기서 말하는 ‘등장인물’은 노새를 가리킨다. 원래 노새는 우둔해서 음악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여겼는데, 그런 의미에서 보면 이 곡 역시 일종의 풍자 내지는 조롱이라고 볼 수 있다.
제9곡 ‘숲 속의 뻐꾸기’-피아노 두 대와 클라리넷으로 연주한다. 피아노의 단순한 화음이 숲의 적막함을 표현하고 클라리넷이 뻐꾸기 울음소리를 흉내 낸다.
제10곡 ‘큰 새장’-플루트와 피아노 두 대, 현악 5부 편성. 도입부에서 트레몰로 연주가 새들의 날갯짓을 묘사하고 이어지는 고음 선율이 새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묘사한다. 큰 새장에서 분주하게 날아다니는 새들의 모습을 공간적으로 잘 묘사했다.
제11곡 ‘피아니스트’-피아노 두 대와 현악 5부 편성. 생상스는 “이 곡 연주자는 초보자가 치는 모양과 그 어색함을 흉내 내야 한다”고 지시했다. 피아노를 배운 사람이라면 누구나 어렸을 때 연습했을 쉬운 음계를 첫머리 부분만 고집스럽게 연주한다.
제12곡 ‘화석’-클라리넷과 실로폰, 피아노 두 대, 현악 5부 편성이다. 처음에 실로폰이 연주하는 곡은 생상스가 직접 쓴 교향시 ‘죽음의 무도’의 주제이고, 계속해서 프랑스 동요 ‘난 좋은 담배를 갖고 있다네’ ‘아 어머니께 말씀드리죠’(모차르트의 변주곡-동요 반짝반짝 작은 별)를 비롯해 여러 노래를 차례로 인용한다. ‘죽음의 무도’ 주제로 되돌아온 뒤에는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로지나가 부르는 아리아 선율이 등장한다.
제13곡 ‘백조’-첼로와 피아노 두 대로 연주한다. 여기서는 풍자적 느낌이 전혀 없고 고전적인 우아함이 넘친다. 전곡 가운데 생상스가 생전에 출판을 허락한 유일한 곡이기도 하다. 아름답고 빼어난 선율 때문에 다른 편성으로 편곡해 연주하는 경우도 많다.
제14곡 ‘피날레’-플루트, 클라리넷, 하모늄, 실로폰, 피아노 두 대, 현악 5부 편성으로 지금까지 사용된 악기 대부분이 등장한다. 피아노와 현이 연주한 서주 악상이 다시 등장하고 클라리넷이 가볍고 재치 있는 주제를 연주하는데 이것은 오펜바흐 ‘천국과 지옥’의 피날레 선율이기도 하다. 이어 당나귀, 암탉, 캥거루, 노새를 비롯해 지금까지 등장한 모든 동물이 연이어 모습을 보이면서 떠들썩하게 전곡을 마무리한다.
손영령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 졸
부천문화재단 놀라운오케스트라 주 강사
연세중앙교회 오케스트라
위 글은 교회신문 <45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