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친해지기] 대(大)작곡가들의 마지막 교향곡

등록날짜 [ 2015-12-15 22:17:30 ]

마지막에 빛난 예술혼에 무한한 감동 느껴

우리 삶의 끝도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봐야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이다. 연말에는 특히 크고 작은 연주가 많아 볼거리가 풍성하다. 그중 한 해를 정리하는 프로그램으로 많이 연주하는 곡은 무엇일까? 베토벤이 오랜 세월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마지막 교향곡, 9번 ‘합창’이 아닐까 싶다.

 

대가의 마지막 작품에 우리가 보내는 눈길은 남다르다. 남은 힘을 소진하면서까지 세상에 남기고 싶었던 메시지를 느껴 보고 싶기 때문이다. 살아생전 완성하지 못해 미완성으로 남은 작품도 있지만, 최후의 순간에 남긴 작품을 보면 그 가치가 대단하다.

 

하이든(1732~1809)이나 모차르트(1756~1791)시대는 후대에 남을 명작이나 고전적 명곡이라는 개념이 탄생하기 전이었다. 많은 작품이 일회성 이벤트를 염두에 두고 쓰였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남긴 교향곡은 양적으로 매우 많다.

 

하이든의 경우, 생애 동안 완성한 교향곡이 104곡에 이를 정도다. 베토벤(1770~1827)에 이르러 이 같은 생각이 크게 바뀌었다. 특히 3번 교향곡 이후에는 한 곡 한 곡이 후대에 남을 고전이 되어야 한다는 염원으로 창작됐다. 베토벤의 마지막 교향곡, 9번 ‘합창’(1824)은 ‘실러의 <환희의 송가>에 곡을 붙이겠다’는 착상에서 완성하기까지 30년이 걸렸고 첫 구상도 15년 이상이 걸렸다.

 

19세기에는 광대한 우주의 소리를 담아낸 베토벤 교향곡이야말로 독일 교향곡의 모본(模本)으로 여겼다. 작곡가들은 새 교향곡 작업에 착수할 때마다 강박에 가까운 사명의식을 느꼈다. 베토벤 이후 40여 년간 교향곡이 거의 사멸할 정도였는데, 이러한 교향곡 침체기는 브람스에 의해 막을 내렸다.

 

브람스(1833~1897)는 베토벤을 의식하면서 무려 21년에 걸쳐 1번 교향곡을 완성했다. 브람스는 교향곡을 단지 4곡만 남겼는데 마지막 4번은 심각함과 우수, 체념에 가까운 달관이 전곡에 서려 있다. ‘어둠에서 광명으로’ 향하는 베토벤풍의 구도를 버리고, 어둠에서 비극으로 침잠해 가는 자신만의 교향곡 모델을 확립한 것이다. 52세에 불과한 거장(巨匠)은 이미 생의 저녁을 느끼고 이 작품을 마지막 교향곡으로 여겼던 것일까. 초연한 지 11년이 지난 1896년, 브람스는 이 곡 1악장 악보를 꺼내 ‘오 죽음이여, 오 죽음이여’라고 적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897년 생을 마감했다.

 

브루크너(1824~1896)의 마지막 곡이 된 9번 교향곡은 1887년 작업을 시작했으나 6년 뒤에야 1악장을 완성할 만큼, 진척이 더뎠다. 브루크너는 이 작품을 작곡하면서 두 가지 의미 있는 말을 남겼다. “이 작품을 사랑하는 하나님에게 바친다”라는 헌사와 “내가 마지막 악장을 완성하지 못하면 3악장 뒤에 ‘테 데움(Te Deum, 주님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나이다)’을 이어 연주하라”는 당부였다. 브루크너는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작업하다가 4악장 일부만 완성한 채 세상을 떠났다.

 

침통하게 소멸하듯 끝나는 차이코프스키(1840~1893)의 교향곡 6번 ‘비창’은 그의 음악적 유서라는 설이 여러 면에서 지지를 받는다. ‘이 작품은 나의 레퀴엠(진혼곡)’이라고 밝힌 점, 1악장 전개부에서 러시아정교 성가의 진혼 선율을 사용한 점, 1악장 개시 선율이 악보상 십자가 모양을 연상하게 하는 ‘십자가 음형’이라고 분석되는 점이 그 주장을 뒷받침한다.

 

여러 작곡가가 만년(晩年)에 이를수록 곡의 길이와 구성, 편성을 확장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때로는 시벨리우스(1865~1957)나 쇼스타코비치(19061975)처럼 응축한 형식으로 마무리해 교향곡이 최후까지 새로운 스타일로 변화했다.

 

한 해가 저무는 이때, 대작곡가들의 마지막 교향곡을 살피면서 나의 마지막 삶을 그려 본다. 2016년에도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되기를 기도한다.

손영령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전문사 졸

부천문화재단 놀라운오케스트라 주 강사

연세중앙교회 오케스트라
 

위 글은 교회신문 <463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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