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과 친해지기] 오페라 영역에 새로운 장을 연, 바그너

등록날짜 [ 2016-01-19 22:41:58 ]

평생 무신론자로, ‘이라는 존재를 부인하며 살았으나

말년에 여인 코지마를 만난 후 하나님을 믿고 새로워져

 

 

베토벤은 생애 동안 수많은 작품과 더불어 교향곡 9곡을 남겼다. 베토벤이 죽은 후, 유럽 음악, 특히 교향곡 부문에서 사람들은 딜레마에 빠졌다. ‘과연 누가 베토벤의 교향곡을 뛰어넘는 작품을 쓸 수 있단 말인가?’

 

서양 근대음악사를 보면, 많은 작곡가가 베토벤이라는 커다란 산을 넘고자 고민하고 노력한 흔적이 남아 있다. 이런 고민과 노력이 서양 근대음악사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그너는 아예 교향곡이라는 분야를 비켜 서서 특유의 강인한 정신력으로 오페라 영역에서 새로운 장을 열었다. 바그너의 오페라는 악극, 뮤직 드라마라고 부른다.

 

특히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자그마치 4일 동안 공연하는 니벨룽의 반지를 보통 (Ring) 시리즈라고 부른다. 첫째 날 라인의 황금으로 시작해 둘째 날 발퀴레’, 셋째 날 지크프리트’, 마지막 넷째 날에는 신들의 황혼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마치 대하드라마를 대하는 느낌이 드는 이 전대미문의 대작은 매년 독일 바이로이트 시에 있는 전용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한다. ‘바그네리안이라 부르는 바그너 애호가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특별한 축제다.

 

바그너는 이 4부작 음악극을 쓰는 도중에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는 또 다른 음악극을 썼다. 이 작품도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작으로 평가된다.

 

특히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아주 특이한 화성 진행으로 유명하다. 보통 화성 진행이 항상 으뜸화음으로 해결되는 데 비해, ‘트리스탄 코드라고도 부르는 화성 진행은, 해결되지 않는 감7화음과 딸림7화음이 연속된다. 마치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표현하는 듯하다. 또한 바그너가 당시 절친한 후원자의 부인과 사랑에 빠진 자신의 경험을 담아 애끓는 듯한 심정을 토로한 듯하다.

 
바그너.
 

 

이는 바그너 이후 작곡가들에게 화성의 해체를 가져왔고, 드뷔시의 온음계와 쇤베르크의 ‘12음계가 탄생하는 토대가 됐다.

바그너처럼 철학가와 관계 깊은 음악가도 없었다. 바그너는 우연히 쇼펜하우어의 의지로부터의 표상을 읽고 감명받아 남은 평생 수차례 정독했다. 앞서 언급한 트리스탄과 이졸데는 그 영향으로 탄생했다고 한다.

 

바그너는 지금까지 아마도 유일무이하게 철학자에게 강한 영향을 미친 음악가가 아닌가 싶다. 그 철학자는 바로 신은 죽었다로 악명 높은 니체다.

 

니체는 열 살 정도 위인 바그너를 평소 존경하고 그의 강한 의지를 흠모하고 따랐다. 그들은 부자지간을 연상할 정도로 각별한 사이로 지냈으나 인생 후반에 가서 갈라섰다. 특히 니체가 바그너를 격렬한 비판으로 몰아세웠다.

 
독일 뮌헨 국립극장에서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공연 모습.

 


여기부터는 전적으로 필자의 개인적인 상상과 추측이다
.

 

유독 어려운 환경에서 강인한 정신력으로 버텨 온 바그너는 평생 이라는 존재를 부인하며 살았다. 여성 편력도 심해 앞서 말한 유부녀와 사랑뿐만 아니라 숱한 염문을 퍼트리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만나 결혼한 여자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로 유명한 프란츠 리스트의 딸 코지마였다.

 

바그너는 코지마를 만나 그동안 방탕한 생활을 청산하고 인생에서 거의 처음으로 안정된 생활을 꾸린다. 코지마는 하나님을 믿는 여자였다. 아마도 코지마는 평생 쉼 없이 자신의 의지로만 살아왔던 바그너를 하나님께 인도했으리라. 그래서인지 모르나 바그너는 마지막 작품으로 예수님의 성배(聖杯)를 지키는 기사의 전설을 다룬 음악극 파르지발을 썼다. 니체는 이 파르지발을 유독 심하게 공격했다.

 

아마도 일종의 핍박이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니체는 정작 이 작품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그저 표면적으로 드러난 부분만으로 갖은 오해와 핍박을 퍼부었던 것이다. 그러던 니체는 이 작품의 전주곡을 다 듣기도 전에 인간의 역사 이래 이런 위대한 곡은 없었다며 감탄했다. 결국 그 작품을 제대로 경험하지도 않고 쏟아붓던 핍박은 경험하고 나서 감탄으로 바뀐 것이다.

 

지난해 각별히 은혜로웠던 성탄 감사 전 교인 찬양장면을 기사화한 인터넷 일간신문 사진 밑에, 청소년을 동원했다는 말도 안 되는 댓글이 실린 것을 보았다. 그들은 우리의 감동과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기에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우리 교회를 오해하고 핍박하는 자들도 말씀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도 않고 단편적인 모습만 왜곡되게 보고 비판들을 서슴지 않고 하는 것이다.

 

경험하기 전에는 함부로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한 번만이라도 이 은혜와 감동을 경험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이 나라 이 민족이 모두 주님을 찬양하는 그날을 꿈꾸어 본다.

윤승업

충남도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

연세중앙교회 찬양대 상임지휘자

위 글은 교회신문 <46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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