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3-03 16:12:29 ]
음악에서는 ‘하는 척’이 허용될 수도 있지만
신앙생활은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진실해야
클래식 음악은 상대적으로 대중성을 누리지 못하지만, 종종 클래식 음악계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큰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
가령 오래전 공중파로 방영된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드라마에서 배우들은 음악가로 열연해 바이올린과 첼로를 켜고, 관악기를 불고 지휘를 한다. 전문가가 보면 ‘흉내 내기’라는 사실을 금세 알아차리겠지만 보통 사람들은 실제처럼 착각한다.
소리와 배우의 모션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지고 자세가 흡사할수록 실제 연주와 일치율, 즉 싱크(synchronization의 줄임말)율이 높아져 진짜처럼 느껴진다. 활로 연주하는 척하는 모션을 ‘활싱크’, 노래나 관악기를 부는 척하는 모션을 ‘립싱크’라고 말한다.
대중가수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립싱크로 노래하는 흉내를 내는 가수와 (2)어떤 악조건에도 라이브로 노래하는 가수. 오늘날 편집 기술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음치가 노래를 불러도 완벽한 음원으로 탈바꿈해 제작할 수 있다. 일명 ‘뽀샵’이라는 컴퓨터 그래픽을 사용해 실물을 초월(?)한 신기루를 만들어 내는 것처럼 말이다.
한번은 필자가 속한 오케스트라에서 정기공연을 앞두고 한 바이올린 단원이 이런 양심선언을 했다.
“저는 우리 오케스트라에서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어려운 부분들이 나오면 그저 연주하는 척, 활싱크만 했고 실제로는 소음만 냈어요.”
필자는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었다.
“사실 나도 그래.”
오케스트라 안에서도 기량이 부족하거나 연습이 충분하지 못하면 활싱크나 립싱크와 같은 기술에 의존한다. 오히려 정확하게 소리를 내야 한다는 부담을 덜어서인지 더 화려한 모션과 표정을 선보여 실제 연주하는 사람보다도 멋져 보이는 경우도 있다. 일반 대중은 이렇게 묻어가는 사람들을 알아보기 어렵다.
연주자뿐만 아니라 교회에도 묻어가는 이들이 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교회 성도라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대신해 죽으셨다가 모든 산 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되시려고 다시 살아나신(롬14:9) 사실을 믿는다. 그렇지만 교회 안에서도 두 부류로 나뉜다.
(1)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조롱하고, 오해하고, 십자가에 못 박고, 침 뱉고, 창으로 찌른 장본인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실제로 믿는 자. 그래서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를 외면한 죄, 내가 주인 되어 예수 믿지 않은 죄를 깨달아 회개할 수밖에 없는, 주님과 관계가 실제인 자.
(2)그리고 “설교를 하도 들어서 귀에 못이 박혔다” “식상하다”며 예수 십자가 사건을 믿노라 하고 신앙을 흉내 내는 자. 즉, 예수는 로마 군병과 간악한 유대지도자들과 그 하수인들이 죽였는데 나는 그 덕에 인류의 한 사람으로서 ‘묻어가는’ 관현악단의 활싱크 연주자 같은 자.
하지만 ‘내가 예수 죽인 것’을 심령으로 알지 못한다면, 나와 주님의 관계도 허상이다.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
내가 예수 죽인 자요, 용서받은 자임을 아는 자들은 아무리 입을 다물게 하려 해도 결국 예수님밖에 할 이야기가 없다. 우리는 혹 립싱크하는 가수처럼 흉내만 내는 직장인, 학생, 가정주부일 수 있다. 그러다가 실패한 인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신앙생활만큼은 흉내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내가 생명의 주를 십자가에 달아 죽였지만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셔서 그 이름 아래 모든 이가 무릎 꿇고, 나의 주인이 되게 하신 것, 예수 죽인 자가 바로 ‘나’라는 사실 만큼은 잊어서는 안 된다.
박성진
바이올리니스트
연세중앙교회 오케스트라
위 글은 교회신문 <47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