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4-18 15:23:44 ]
타협하지 않는 신앙의 정절이
얼마나 큰 유산인지를 보여줘
<사진설명> 영화 ‘일사각오’ 중에서.
3월 개봉해 호평을 얻고 있는 영화 <일사각오>는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를 반대한 故 주기철 목사의 ‘일사각오(一死覺悟)’ 순교 신앙을 그리고 있다. 지난해 KBS에서 방송돼 10%대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를 스크린으로 옮긴 것인데, 연출을 맡은 권혁만 KBS PD는 이를 위해 상당 부분을 추가로 촬영했다.
영화 <일사각오>는 신앙을 지킨 한 사람의 믿음이 수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영향을 끼치고, 그로 말미암아 일본의 식민화 정책에 어떤 차질을 빚게 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일제시대 기독교의 신사참배 거부가 없었다면 조선의 미래는 더욱 암울했고, 청년들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일사각오>는 기독교인만 봐야 하는 영화가 아니다.
주기철 목사가 신사참배를 반대해 겪은 고문과 순교는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기독교인들이 신사참배를 반대해 투옥당하고 억압받고 순교했다’는 사실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일제는 기독교인들이 신사참배를 반대함으로 황국민화(皇國民化)가 지연되자 큰 고민에 빠졌다. 아마 기독교인들이 저항하지 않았다면 황국민화가 신속하게 이루어져, 1920년대에 이미 조선을 일본 영토로 완전히 귀속시켰을 것이다.
20세기에 일본은 열강의 각축장이었던 아시아 전쟁과 세계 전쟁의 중심에 서 있었다. 만약 조선이 일찍 황국민화되었다면, 일본군에 의해 조선 청년 대부분이 징병됐을 테고, 전쟁터에서 일제의 총알받이로 쓰러져 갔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청년이 없어졌다고 할 때 과연 광복을 맞이할 수 있었겠는가? 또 광복했더라도 나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청년이 사라진 조선이 무슨 힘으로 공산국가의 위협을 이겨낼 수 있겠는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사진설명> 주기철 목사가 부산 초량교회 부임 당시 기도했던 장소 무학산 ‘십자바위’.
일제가 조선 청년들을 전쟁터에 내보내는 것을 섣불리 결정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기독교인들의 신사참배 반대 운동 때문이었다고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주기철 목사는 기독교인으로서 핍박을 받았다는 데에 머물지 않고, 그 숭고한 믿음의 정절로 말미암아 수많은 기독교인에게 순교의 각오를 다시금 가지게 했다. 그 순교의 정신은 곧 신사참배에 굴하지 않는 믿음을 일본인에게 보임으로써 한국인의 민족 정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이런 관점에서 <일사각오>의 상영은 한국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을 하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본다. 영화 <일사각오>는 역사 왜곡이 난무한 오늘 우리 시대에 바른 역사인식을 갖게 하고, 특히 기독교가 교회를 살릴 뿐 아니라, 민족을 살렸다는 역사의 진실 앞으로 우리를 이끈다.
1940년 9월 20일, 일본 경찰에 잡혀가던 주기철 목사는 거리에 서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설교를 했다.
“주님을 위하여 오는 십자가를 내가 외면했다가 이다음 주님이 ‘고난의 십자가는 어쩌고 왔느냐’고 물으시면 난 무슨 낯으로 주님을 대하겠습니까? 내 주의 십자가만 바라보고 나아갑시다.”
투옥된 주기철 목사는 모진 고문을 당한다. 그곳에서 간수는 주기철 목사를 조롱한다.
“당신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
주기철 목사는 답한다.
“나는 내 힘으로 고통을 견디고 있는 게 아니오. 오로지 그분의 존재와 사랑 때문이오. 나도 내가 십자가를 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주님이 내 십자가를 지고 가고 있었소.”
故 주기철 목사는 과거 신사참배 거부를 이유로 파직됐다. 당시 주기철 목사를 파직한 죄목은 제27회 총회의 신사참배 결의와 총회장의 경고문을 무시했다는 내용이었다. 일제의 압박과 강요로 평양노회는 교회헌법 19조에 의거하여 주기철 목사의 권고사직을 결의했다.
<사진설명>영화 ‘일사각오’에서 주기철 목사가 마지막 투옥을 앞두고 성도들에게 마지막 인사말을 나누고 있다.
합동 측은 2015년 제100회 총회를 맞이하여, 일제의 강요와 압박으로 주기철 목사가 파직된 지 76년 만에 파직 무효를 선언하면서 목사직 복권을 결의했다.
이번 영화 <일사각오>를 통해 다시금 신앙의 본질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무시무시했던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신앙의 결단으로 끝까지 일제의 신사 앞에 절하지 않았던 순교자 주기철 목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이 민족을 사랑하고, 크게 축복하셨는지 알았으면 좋겠다.
그로 말미암아 이제 민족을 살리는 일에 기독교가 다시 한 번 일사각오의 신앙으로 앞장서 나가기를 기대해 본다.
/정재형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47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