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6-05-17 23:15:32 ]
곡의 형식 유무를 떠나 ‘예수 피’ 찬양이 가장 중요해
하나님께 감사하며, 사람과는 서로 은혜를 나누어야
한 목사님이 어느 목사님께 “목사님, 할렐루야가 무슨 뜻입니까?”라는 질문을 슬며시 했다. 너무 쉬운 질문을 받은 목사님께서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으시며 의기양양하게 벌떡 일어나서 하시는 말씀.
“남원에는 광한루가 있고, 진주에는 촉성루가 있고, 밀양에는 영남루가 있고, 하늘에는 할렐루가 있다!”
진멸과 찬양이 공존
히브리어인 ‘할렐루야’를 직역하면, ‘할’은 ‘진멸한다’는 뜻이고 ‘렐’은 ‘할’과 ‘루’ 사이에 자연스레 생긴 발음이기에 뜻이 없다. ‘루’는 2인칭 복수로서 ‘너희’이란 뜻이고 ‘야’는 ‘여호와’를 가리킨다. 즉 ‘여호와께서 너희를 진멸하시리라’라는 말이다.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하게 한 후 가나안을 정복하게 하셨다. ‘할렐루야’는 사단의 세력을 진멸(전멸)하라고 하신 지상명령이다. 여기에서 ‘진멸’이란 사람들을 멸한다는 의미보다 가나안 사람들의 ‘다신교 종교문화와 사상’을 없애라는 의미를 더 강하게 담는다. ‘할렐루야’를 의역하면, ‘전쟁에 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즉 ‘여호와를 찬양하라!’라는 뜻이다.
찬양이란 찬송가와 복음성가를 모두 포함한다. 복음성가는 찬송가 책 안에 있는 복음성가와 찬송가 책 밖에 있는 복음성가로 나뉜다. 현행 찬송가 책은 복음성가 95%와 소수의 찬송가로 만들어져 있다. 찬송가와 복음성가는 어떻게 구분해야 할까?
첫째, 가사를 분석해 보면 알 수 있다. 찬송가는 가사의 대상이 전적으로 하나님이어야 하고, 복음성가는 가사의 대상이 사람이다. 복음성가의 대상이 사람인 까닭은 복음성가의 가장 큰 목적이 하나님 말씀을 전파하는 전도 사명을 띠기 때문이다. 찬송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수직적 관계고, 복음성가는 인간 대 인간 사이의 수평적 관계다. 또 찬송가는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복음성가는 사람들이 듣는 것을 전제하므로 가사 내용이나 음악 형식, 연주 태도가 다르기 마련이다.
둘째, 음악 형식으로 비교해 보면 ‘아멘’의 유무다. 찬송가에는 곡의 마지막에 ‘아멘’이 반드시 있어야 하지만, 복음성가에는 ‘아멘’이 없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셋째, 찬송가는 회중이 쉽게 부르도록 하는 데에 관심을 두지만, 복음성가는 쉽게 익히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넷째, 찬송가는 하나의 가사에 하나의 음이 붙는 데 반해, 복음성가는 비교적 자유스러운 짜임새를 갖고 있다.
다섯째, 화성(코드) 사용에서 찬송가는 장엄하고 신중한 수직적 화성을 진행한다. 반면 복음성가는 가볍고 색채적인 효과의 수평적 화성으로 진행한다. 멜로디에서 찬송가 선율이 직선적이고 장엄한 데 비해, 복음성가의 선율은 전도를 목적으로 쉽고 가볍고 감상적이며 때로는 정열적이다.
예수 그리스도 피의 위력
찬송가든 복음성가든 가장 중요한 점은 노래에 담긴 ‘피의 유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해, 바로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시고, 죄와 저주와 사망에서 나를 건지신 그 은혜를 노랫말과 음률에 담는 것이 중요하다.
피 없는 제사, 피 없는 예배, 피 없는 찬송, 피 없는 기도, 피 없는 회개, 피 없는 사랑, 피 없는 선교, 피 없는 구제, 피 없는 예물은 결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 창세기 4장에 피 없는 가인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열납하지 않으신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가 예배드릴 때마다 피의 예배를 받기 원하신다. 주님이 쓰시는 담임목사를 통해 예배 시간마다 죄를 깨닫게 하시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회개할 수 있게 하신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연세중앙교회 성도들이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내 영혼이 회개하고 예수 믿고 천국 갈 기회를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길 바란다.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회개하고 예물 드리고 충성하는 일 모두에 예수의 피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박은혜
연세중앙교회 오케스트라/ 바이올리니스트
위 글은 교회신문 <48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