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7-03-28 15:40:10 ]
사육제(카니발)는 사순절에 고기를 먹지 못하니 그 전까지 실컷 먹고 즐기자는 축제에서 유래
유명 카니발 현장에 가 보면 우상의 탈을 쓰고 하체를 드러내는 등 음란과 방탕의 모습 넘쳐나
아이들에게 동물의 특성을 표현한 작품을 들려주면서 클래식 음악과 친해지게 하려는 시도를 많이 한다. 이때 가장 주목받는 레퍼토리가 생상(Saint-Saens)의 ‘동물의 사육제’와 프로코피예프(Prokofiev)의 ‘피터와 늑대’다. 특히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는 사자, 닭, 거북이, 코끼리, 캥거루, 뻐꾸기, 백조 등 동물의 특성을 다양한 악기로 표현해 인기가 높다(QR 코드 참조). 동물들이 ‘사육제(Carnival)’를 한다는 발상도 재밌게 와닿는다.
하지만 ‘사육제’ 혹은 영어 그대로 ‘카니발’이란 단어의 유래와 의미를 제대로 아는 이는 드물다. 영어 ‘카니발’은 ‘육신’이나 ‘몸’을 뜻하는 라틴어 ‘carne’에 작별을 뜻하는 라틴어 ‘vale’를 합성한 단어로 ‘고기여 안녕’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사육제(謝肉祭)’라는 한자어도 ‘카니발’을 그대로 직역해 고기(肉)에게 안녕(謝)을 고하는 축제(祭)란 뜻이다. 그러면 왜 ‘고기여 안녕’이라는 날이 생겨난 것일까?
사육제의 유래
325년 니케아 공회(소아시아 니케아에서 개최한 세계교회회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을 기념하려고 춘분 후 최초로 보름달 다음에 오는 첫째 주일을 ‘부활절’로 정했다. 여기에 사람들은 ‘40일’이라는 성경상 의미 있는 숫자를 응용해 부활절 직전 40일간 그리스도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경건하게 지내려 했다. 심지어 금식하거나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규칙도 만들었다. 1순(旬)이 10일이기에, 부활절 이전 고난의 40일을 ‘사순절(四旬節)’이라고 부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전 40일, 예수께서 다시 사셔서 마귀의 사망 권세를 깨뜨린 그 승리와 감사의 날에 이르기까지 주께서 내 죗값을 대신해 당하신 고난을 깊이 새기고 동참한다는데 무엇이 문제겠는가.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 고난의 사순절에 고기를 먹지 못하니 이를 빌미로 그전에 실컷 고기를 먹고 즐기자면서 ‘사육제’를 고안해 냈다.
<사진설명> 브라질 리우 카니발(Rio Carnival)
방탕과 음란의 극치로 치닫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육제(Carnival)는 사순절을 핑계 삼아 만들었다. 마귀, 용, 새 같은 우상 분장을 하고 음부를 드러내고 행진한다.
사순절을 핑계 삼아 만든 사육제는 급기야 방탕과 음란의 극치로 치닫고 하나님을 대적했다. 요즘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브라질 리우 카니발,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니발, 스페인 카니발에서는 마귀, 용, 새 같은 우상 분장을 하고 음부를 드러내고 행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것을 ‘볼거리’라고 치켜세우고 사람들을 광란의 도가니에 빠지게 한다. 영적인 세계를 아는 이들은 배후에 마귀역사가 있다고 단번에 분별할 수 있다.
마귀 입장에서 보면, 부활절은 에덴동산에서 인간을 죄짓게 해서 사망 권세를 얻은 자신이 하나님 아들의 부활로 말미암아 철저히 패배한 날이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였기에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줄 알았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셔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고(고전15:54) 예수께서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성경대로 이루신 전능자로 인정되고(롬1:4), 모든 산 자와 죽은 자의 주인(롬14:9)이 되어 구원을 완성하셨다.
또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행17:31)를 주신 사건이니 마귀는 가능하면 부활절을 철저히 은폐하고 엉뚱한 데로 관심을 돌리게 한다. ‘사육제’를 만들어 정욕의 잔치를 베풀고, ‘부활절’ 의미를 달걀에 묻어 버리고, 부활절 한 날이 지나면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를 더는 기억하지 못하게 발버둥 친다.
그렇지만 부활절은 단지 어느 하루의 일이 아니다. 한 주일의 행사가 아니다. 월요일에도, 오늘 밤에도, 매일 눈뜰 때마다 기념해야 할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무덤은 비었고 돌문은 굴렀다. 예수는 다시 사셨고, 제자들이 만지고 함께 먹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토록 살아 계신 주시다.
살아 계신 주를 찬양
카니발과 관련한 세상 노래는 흘러넘친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찬양곡이 많지만 막상 ‘부활’ 찬양은 이상하리만큼 레퍼토리가 없다. 왜 이런 불균형이 생긴 것일까? 교회 안팎으로도 부활의 사실이 밝히 드러남을 방해하는 집요한 어둠의 세력이 있는 듯하다.
우리 교회는 늘 살아 계신 주를 찬양하면서 다가오는 부활절을 간절히 준비하게 하시니 무척 감사하다. 우리에게 그날은 다른 모든 날과 마찬가지로 고난 겪으시고 부활하셔서 승리하신, 우리의 주인이 되신 살아 계신 주 예수를 찬양하는 날이요, 십자가 보혈이 헛되지 않도록 복음을 위해 목숨 걸 각오를 다짐하는 날이 될 것이다. 올해 역시 부활절을 맞아 살아 계신 우리 주를 찬양할 시간이 무척 기대된다.
<클래식 음악>
생상의 ‘동물의 사육제’
/박성진
연세중앙교회 오케스트라
미래에셋증권 상무
위 글은 교회신문 <52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