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비움의 미학

등록날짜 [ 2017-08-03 13:45:48 ]

음악의 아버지 바흐는 익숙함을 과감히 내려놓는 비움이 있어 위대해
하계성회는 내 고집과 자아를 비우고 영적 성장 이룰 큰 기회


‘음악의 아버지’ 바흐(Bach, 1685~1750). 바흐를 최고의 음악가라고 꼽는 데에 아무도 이견이 없다. 바흐는 바로크 음악가로서 음악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사람들이 바흐를 위대하다고 평가하는 가장 큰 이유는 (1) 평균율과 대위법의 완성 (2) 음악 형식의 다양성과 포용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무엇이 바흐로 하여금 그 같은 업적을 이루게 했을까? 이는 아마 성장과 진보를 이루려고 익숙한 것을 과감히 버리는 ‘비움’ 또는 ‘내려놓음’의 혁신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 비움 1: 손에 익은 악기와 정통 독일음악
 바흐는 유년 시절부터 친형 크리스토프에게 오르간을 배워 음악에 입문한 오르간 마니아였다. 바흐의 친형은 당대 최고 오르간 연주자 파헬벨의 제자였으니 바흐 역시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바흐는 오르간만을 고집하지 않고 청소년기에 ‘보이소프라노’ 가수도 해 보고, 오페라 중심지인 독일 함부르크에 가서 프랑스 관현악 양식과 바이올린을 공부했다. 1703년에는 오르간을 잠시 접어 둔 채 바이마르 궁정악단 바이올리니스트로 일했다.

또 바흐는 독일의 보수적인 음악 가문에서 자랐지만, 다채로운 음악을 풍성하게 받아들였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콘체르토 양식에 자극받았고, 국적이 다른 대가들을 만나 음악 소양을 넓혔다. 바이마르 궁정악단 시절에는 바이올린 악파의 대가인 베스트호프를 만났다. 이처럼 바흐는 무반주 파르티타(바로크 시대에 쓰인 음악 형식)에서 수많은 다성적 관현악 조곡, 오페라, 칸타타에 이르기까지 모든 장르를 망라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악을 만들어 낼 기반을 다졌다.

■ 비움 2: 정통 피타고라스 음계
바흐 당시 음악가들은 작곡하거나 악기를 조율할 때 ‘순정율’을 사용했다. ‘순정율’은 고대 수학자 피타고라스가 음악을 연구하다가 ‘음높이’에 따른 규칙을 알아낸 것이다. 바로 ①악기 현의 길이가 반(1/2)으로 줄면 한 옥타브가 높아진다는 것(낮은 도→높은 도) ②현의 길이가 2/3로 줄어들면 5도만큼 높아진다는 것(도→솔). 이러한 음 간 비례 규칙을 이용해 음계를 만든 것이다. 문제는 비율을 계산해 얻은 ‘순정율’ 음들은, 음 간 간격이 균일하지 않아 조를 옮기거나 건반악기를 사용할 때 불협화음을 낸다.

바흐는 이를 극복하려고 기존 방식을 내려놓고 ‘평균율’이란 혁신을 고안해 냈다. 음 간 길이를 미세하게 조정해 일정한 평균값으로 음 간격을 일치시키고, 모든 악기가 자유롭게 조옮김을 해 가면서 연주가 가능하게 했다. 이를 옥타브 음계에서 이론적으로 가능한 장조와 단조, 24조성의 전주곡과 푸가로 집대성한 ‘평균율’ 모음곡 (Das wohltemperierte Klavier BWV 846~893)으로 시현해 보였고, 악기 여러 개가 들어가고 나올 때 각각 선율들이 조화와 대비를 이루게 만드는 대위법(counterpoint)의 기초까지 이룩했다. 그래서 바흐를 ‘음악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데 이견이 없는 것이다.

■ 비움 3: 하계성회는 나를 비우는 바캉스
바흐의 기념비적 업적 뒤에는 자신의 것을 포기한 ‘비움’이 있었듯 신앙에서도 주님은 ‘내 것’을 비우도록 해 주시는 은혜의 기회들이 있다. 필자는 몇 해 전 직장에서 쫓겨난 적이 있다. 퇴사를 처음 겪어 보니 당황스럽기도 했다. 하지만 필자 역시 내 분야에서 쌓은 재주와 숙련됨만으로 ‘내가 쓸모 있다’고 착각하는 부류였음을 깨달을 기회였다. 약 한 달간 교회와 수양관을 오가며 아무 데도 얽매이지 않고 성회에 참석해 주님과 영적인 휴가를 보냈다. 이전에 가지고 있던 고집과 착각을 비워 드리고 주님으로 채우는…. 지금 생각해도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 중 하나였다.

사업은 망할 수 있고, 회사에서는 해고당할 수 있지만 신앙은 어떤가? 우리는 많은 경우 “맡은 일이 많아서” “내가 없으면 우리 부서가 돌아가질 않아서” “내가 관여하고 결정해야 하니까”라며 성회 참석을 머뭇거린다. 내 손에 쥔 것 하나 내려놓지 못해 하계성회조차 참석하지 못한다면 교회에서건 직장에서건 불행한 일이다. 바쁘게 쌓아올린 공력은 쓸데없는 ‘내 것’일 뿐, 훗날 영혼의 때에 다 헛일로 판명되고 주님이 “나는 너를 모른다”고 하실지도 모른다. 이런 당황할 일을 당하지 않으려거든 착각 속에 바쁜 나를 비워야 한다.

프랑스어 ‘바캉스(vacance)’는 ‘비움’이란 뜻의 라틴어 ‘바카티온(vacation)’에서 나왔다. 휴가란 뜻의 영어 ‘버케이션(vacation)’도 같은 어원이고, ‘아무것도 없는 진공 상태’ ‘다 비워진 것’의 영어단어 ‘배큠(vacuum)’도 같은 어원이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특히 한 자리, 한 직책 또는 한 직분을 오래 맡은 노련하다 칭함받는 사람들일수록 하계성회는 썩어져야 할 나, 변화를 거부하는 나를 비워 낼 진정한 바캉스다.






바흐
피아노 평균율 모음곡






/박성진
연세중앙교회 오케스트라 상임단장
미래에셋대우 상무

위 글은 교회신문 <53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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