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7-11-28 11:13:09 ]
가톨릭의 모진 박해에도 끝까지 신앙 지킨 위그노 교도들
유럽 장인 정신에도 영향 줘 수많은 명품 탄생시켜
명품이 진짜로 있다. 장인(匠人) 정신이 제품의 눈에 안 보이는 한구석 바느질 한 땀 한 땀에서조차 흘러나온다. 디자인과 내구성은 세월이 흘러도 허접해지지 않는다. 그저 겉모습을 흉내 낸 소위 ‘짝퉁’과는 차원이 다른 물건들이다. 미식가들이 열광하는 프랑스 빵이라든가, 요즘 같은 디지털 시대에도 전자시계 구매 비용보다 수십에서 수백 배를 지출해야 하는 순수 태엽으로 움직이는 스위스 시계라든가, 엔진 효율, 구동 메커니즘, 밸런스에서 차원이 다르면서도 간결한 구조를 지녀 ‘외계인을 고문해서 만든 차’라는 별명을 얻은 독일 자동차들이 그런 명품의 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이 같은 명품을 만들어 낸 장인 정신의 출발이 신앙개혁 운동 신자라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그 당시 성도들은 신앙 암흑기를 맞아 면죄부까지 팔면서 복음을 변질시킨 로마 가톨릭의 압제에 대항해 목숨까지 바치며 순수한 복음을 지켰다.
위그노의 태동과 발전
500년 전인 1517년 10월 31일, 면죄부를 사는 순간 죄를 사함받고 천국 간다는 가톨릭에 대항해 마르틴 루터가 ‘95개 조 반박문’을 냈다. 이후 16세기 신앙개혁 운동이 유럽 전역으로 번져 나갔다.
프랑스도 예외는 아니어서 신앙개혁가 칼뱅(영어식 발음 캘빈)이 주축이 돼 복음으로 돌아가자는 신앙개혁 운동이 일어나고 이에 속한 신자들을 ‘위그노’(Huguenots)라 불렀다. 이들이 말하는 ‘믿음’은 복음 그대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주인으로 믿기에’ 모든 삶이 살아 계신 주님 앞에서 드려지는 ‘코람 데오(coram deo)’의 삶이었다. 또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행함과 고백을 분리할 수 없는 믿음’이었다.
동시에 그들의 직업관은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고 무슨 일이든지 사람에게 하듯 말고 주께 하듯 하라”는 주님 말씀 그대로였다. 그들은 최선을 다해 주님께 올려드리듯 빵을 구웠고, 옷을 지었고, 시계를 만들었다. 그러다 난관에 봉착하면 기도해서 해결받았다.
그러니 위그노들이 운영하는 제과점에는 사람들이 새벽부터 줄을 섰다. 대장간, 목공소, 공방도 다 사람들에게 회자(膾炙)했다. 심지어 가톨릭 영주나 기업가들도 부지런한 위그노 직원이라면 대환영했다. 왕실도 마찬가지였다. 1572년 당시 프랑스 황제 샤를 9세가 총애하던 장군 콜리니(Coligny)도 위그노였다.
36년간 자행된 핍박과 불굴의 신앙
그러나 마귀역사는 순수한 복음 그대로 살려 하는 교회를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위그노와 경쟁에 뒤진 가톨릭 교도들의 불안, 분노,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탐욕은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재료였다.
당시 황제의 어머니는 위그노 세력이 커질까 두려워 가톨릭 가문 기즈가(家)를 이용해 콜리니 장군의 암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를 은폐하고자 1572년 8월 24일부터 파리에 모인 위그노 지도자들을 학살했다. 여기에 수많은 일반인 가톨릭도 가세해 위그노 전체를 학살하려 했다. 가톨릭에서 성자(聖者)로 취급하는 ‘바르톨로메오’ 축일 전날부터 학살을 시작했기에 ‘바르톨로메오 학살’이라고도 한다.
6일 만에 희생당한 위그노는 3000명을 넘어섰고, 참극의 불길은 지방까지 번져 나갔다. 36년 후 신앙의 자유를 허용한 ‘낭트칙령’을 반포할 때까지 어른, 아이, 부녀자 할 것 없이 위그노들은 처참한 핍박을 받았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는 ‘위그노의 절멸을 찬양하는 기념 메달’까지 만들었다.
당시 무수한 주의 자녀가 가톨릭으로 개종할 것을 거부하고 순교했다. 일부는 박해를 피해 스위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로 망명했다. 망명한 이들과 원래 그 지역의 개신교도들이 오늘날 스위스 시계, 독일 자동차, 영국 산업혁명의 주역이 되었다. 이를 목격한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를 썼다.
핍박 사건 각색한 오페라
1836년 파리에서 활동한 독일 태생 작곡가 ‘마이어베어’(Meyerbeer)는 실화 바르톨로메오 대학살을 배경으로 오페라 <위그노>를 써서 초연했다. 오페라의 탄탄한 스토리 구성과 아리아의 아름다움도 크지만, 특히 남자 귀족 주인공이 신앙의 형제들을 버릴 수 없어 믿음의 결단을 내리는 장면이 감동을 준다.
<사진설명> 오페라 <위그노>의 한 장면.
주인공은 죽을 줄 뻔히 알고도 학살 음모를 알리고자 위그노들이 모인 교회로 향한다. 이를 말리는 가톨릭 백작 딸인 약혼녀가 참된 신앙을 깨닫고 위그노로 개종한 후 함께 기쁨으로 순교를 맞이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이 앞을 가린다.
/박성진
연세중앙교회 오케스트라 상임단장
미래에셋대우 상무
위 글은 교회신문 <55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