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독특한 시각으로 신앙 표현한 자코포 틴토레토
등록날짜 [ 2017-12-12 16:05:10 ]
자코포 틴토레토(1519~1594)는 16세기 말 베네치아 화파를 이끈 이탈리아 화가다.
본명은 ‘자코포 로부스티’다. 염색공의 아들로 태어났기에 사람들은 그의 본명보다 ‘어린 염색공’이라는 뜻의 별명 ‘틴토레토’라고 불렀다.
틴토레토는 ‘티치아노처럼 채색하고 미켈란젤로처럼 소묘하기’를 목표 삼고 작품을 그렸다. 후기 르네상스를 잇는 티치아노(1488~1576)에게 색채 감각을 물려받았으나 단순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은 거부했다. 또 1545년에 일 년간 로마에 체류한 것을 계기로 미켈란젤로의 인체 연구를 기초로 한 극적 구도와 빛의 효과를 연구해 틴토레토만의 작품 세계를 구현해 냈다. 인공적인 빛과 그림자, 과장된 단축법을 사용해 극적이고도 순간적인 효과를 작품에 담았다.
틴토레토의 작품은 거친 붓놀림과 대담한 색채를 사용해 극적인 긴장감이 두드러진다. 또 예리한 명암 처리와 극적 구도로 매너리즘의 특성을 최고조로 발전시켰다.
틴토레토는 세속적·물질적 사회 속에서 정신적 가치를 고수하는 중산층을 위한 그림을 많이 그렸다. 70대까지 계속 그림을 그렸는데, 그리는 속도가 빨라 작품을 많이 남겼다. 후대의 많은 화가가 그를 존경해 ‘화가의 화가’라 부른다.
틴토레토가 그린 종교화에는 대담한 구도와 개개인의 인물상이 어우러져 신비로움과 비장미가 담겨 있다. 틴토레토 화풍의 특색을 떠올리며 그의 두 작품을 감상해 보자.
<물 위를 걷는 예수 그리스도>
<사진설명> <물 위를 걷는 예수 그리스도> 틴토레토, 1575~1580, oil on canvas, 117.1 x 169.2cm, Samuel H. Kress Collection.
이 그림은 틴토레토의 개성을 잘 보여준다. 성경 속 ‘물 위를 걷는 예수님(마14:22~33)’을 고전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긴장감과 극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하려고 화면을 다소 거칠게 처리했다. 예수님의 동작을 대담하게 드러내 복음의 핵심을 격정적으로 표현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잔뜩 끼었고 큰 파도와 거친 바람이 배를 삼킬 듯하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친 파도 위에 서서 제자들에게 오른손을 들어 장엄하게 손짓한다. 불안에 떠는 제자들을 안심시켜 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뻗은 팔은 자석처럼 베드로를 끌어당긴다.
배 위에 있는 제자들의 얼굴에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이런 효과를 드러내기 위해 제자들을 대부분 거칠게 그렸고 후광도 없다. 배의 키를 잡고 있는 사람과 베드로만 후광이 있다. 예수님의 손가락은 배의 키를 잡고 있는 사람을 향한다. 그의 모습은 예수님과 흡사하고, 그의 시선은 햇빛이 비치는 밝은 하늘을 향한다. 예수님이 그의 배에 올라타 바람을 그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옆모습으로 물 위를 걷고, 발은 초록빛이다. 꼿꼿한 자세의 예수님과 허둥대는 제자들 사이에 격렬한 파도를 두어 대비했다. 돛대까지 휠 정도로 세차게 부는 바람과 출렁이는 파도에 배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기우뚱거린다. 하지만 베드로만은 예수님의 품속으로 빨려 들어갈 듯이 물 위로 내려서고 있다. 이런 정경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른편 나뭇가지에 핀 꽃과 잎사귀는 고요에 싸여 있다. 나무에는 희망을 상징하는 하얀 꽃이 나뭇잎 사이로 피어오른다.
전체 화면은 어두운 푸른 색조로 채웠다. 거칠게 일렁이는 파도와 수평선 너머로 보이는 먹구름을 희미하게 밝아오는 여명과 어둠과 밝음으로 예리하게 대비했다. 아울러 틴토레토는 자신의 독특한 원근법을 구사해 의연하고 당당한 예수님의 모습을 극적이고도 긴장감 있게 표현했다.
<빌라도 앞에 선 예수 그리스도>
<사진설명> <빌라도 앞에 선 예수 그리스도> 틴토레토, 1566~1567, Oil on canvas, 515 x 380cm, Scuola Grande di San Rocco, Venice.
이 그림은 예수님 전면에 오묘하게 다가오는 비현실적인 빛 때문에 예수님을 재판하는 광경이 현실 세계가 아니라 환영처럼 나타난다. 근원을 알 수 없이 들어오는 빛은 화면을 더욱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한다. 빌라도가 손 씻는 모습을 바라보는 예수님은 재판의 권위에 전혀 위축돼 보이지 않는다. 빌라도도 재판장으로서 권위나 위엄을 보이기보다는 마음의 동요를 숨기지 못한 채 불안감에 싸여 시종이 떠온 물에 손을 씻고 있다. 두 손 묶인 채 홀로 하얗게 온몸을 드러내고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예수님과 다소 비현실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손을 씻는 빌라도를 극적으로 대비했다.
예수님 뒤편으로는 포승줄을 놓지 않으려고 몸을 비트는 병사, 격한 감정에 싸인 대제사장과 군중이 한 무리가 됐다. 이들은 이 재판에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이는 빌라도를 바라보며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들과는 무관한 듯 빌라도의 발아래로 서기가 쪼그려 앉아 재판을 기록하고 있다.
각기 서로 다른 동작으로 움직이고 있는 인물 속에서 오직 흰 빛에 둘러싸인 예수님만 홀로 동떨어진 채 미동 없이 고요에 싸여 있다. 작품 속에 나타나는 빛과 색채는 흰 옷을 걸치고 재판관 앞에 묵묵히 서 있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범접할 수 없는 숭엄한 느낌을 준다.
강렬한 색채, 밝음과 어둠의 뚜렷한 대비, 인물들의 다소 과장된 듯한 몸짓들이 왜곡된 공간 속에 서로 어우러져 곧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자아낸다. 틴토레토는 이 작품에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뜨거운 감정을 신비롭게 묘사했다.
/박소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555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