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산책] 하나님 은혜가 필요한 ‘불쌍한 사람들’

등록날짜 [ 2018-01-23 11:23:16 ]

빅토르 위고의 소설 ‘레 미제라블’
모두를 불쌍히 여기는 하나님 마음과
진정한 집 ‘천국’을 감동적으로 그려내


문화예술 작품을 접하다 보면 작가가 하나님의 사람인지, 세상 신의 주구(走狗, 앞잡이)인지 분명히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어머니와 교사 들이 어릴 때부터 필독하게 하는 <데미안>, <수레바퀴 아래서>, <지와 사랑>의 작가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1946년)인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를 예로 들어보자. 그는 어린아이도 읽는 우화집에서 시집, 소설, 에세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을 발표해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 작가만큼 저 먼 우주 공간을 벗어나 셋째 하늘로 다시 쳐들어가고픈 루시퍼의 욕망을 강렬히 대변해 주는 사람도 없다고 생각한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프락사스(Abraxas)다 (Der Vogel kmpft sich aus dem Ei. Das Ei ist die Welt. Wer geboren werden will, muss eine Welt zerstren. Der Vogel fliegt zu Gott. Der Gott heisst Abraxas)” (<데미안> 중에서)

아프락사스는 선(善)과 악(惡)을 모두 가진 신(神)으로 묘사된다. 이성과 욕망, 삶과 죽음, 축복과 저주, 선과 악, 빛과 어둠의 양극을 포괄하며 어느 것도 경시하지 않는다. 얼핏 보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롬8:6)”이라는 하나님보다 훨씬 관대해 보이며 자신의 죄성(罪性)에 눈뜨기 시작한 청년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는 신이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신이기도 하다. 그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부모나 교회에서 강조하는 밝은 세계만이 아닌, 욕망·욕구·어둠까지도 ‘나 자신’이라고 인정하게 만든다.

그 밝은 세계를 깨는 것-그것이 부모나 규범이나 스승이라 할지라도-을 마치 알을 깨고 나오는 새에 비유해 ‘생명의 탄생’으로 미화한다. 그리고 데미안은 고뇌하는 청년 싱클레어에게 바깥 진짜 세상에서 선악을 모두 알고 있는 진정한 신 ‘아프락사스’를 만날 수 있다고 알려준다. 아프락사스에게 인도하는 데미안은 염동력(念動力)으로 사람을 조종하기도 하는 매우 매력적인 청년이며 그가 소개하는 이성(理性) 베아트리체나 에바 부인 또한 신비로운 존재들이다. 필자는 이 작품을 ‘가장 적나라하게 세상신에게 인도하는 전도지 중 하나’라고 정의한다.

반면 <레 미제라블(Les Misrables)> 영어로  ‘The Miserables’, 즉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란 소설을 쓴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의 작품을 접하면 ‘이분은 하나님을 만났구나’라고 느껴진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한 사람이다. 창녀부터 혁명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를 불쌍히 여기는 주님의 마음과 그들을 모두 구원하고자 하는 애절한 감화, 그리고 마지막에 돌아가야 할 진정한 집은 ‘하나님 계신 천국’이라는 것을 감동적으로 그리고 있다. 런던 피커딜리와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지금도 매회 매진되는, 동명(同名) 소설을 원작으로 한 뮤지컬 <레 미제라블>과 영화도 유명하다. 배가 너무 고파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 동안 옥살이하며 중노역을 치르고 나와 사업가로 성공한 장 발장은 평생 주님께 받은 용서의 은혜를 나눈다.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 부르는 ‘장 발장(Jean Valjean)’의 노래를 기억하시는지?

“하나님, 제 기도를 들어주소서. 지금 저를 부르사 아버지 품에 안기게 하소서. 주 계신 곳에 저 있게 하소서. 지금 저를 그곳에 데려가소서. 저를 집으로 불러주소서. 저를 집으로… (God on high, hear my prayer. Take me now to thy care. Where you are let me be. Take me now. Take me there. Bring me home. Bring me home.)”

이윽고 부모 대신 무한한 사랑을 쏟아 키운 양딸, 자신이 목숨을 걸고 구해준 사위와 이별하고 먼저 천국 간 친구들의 환영을 받으며 이승을 넘어가는 배에 앉아 찬란한 천국으로 갈 때 부르는 영광의 노래. 한때는 혁명의 노래였던 이 노래가 천국 가는 노래로 개사되어 흘러나오며 장 발장의 영혼을 부른다.

“우리는 주님의 정원에서 모든 짐을 내려놓고 부활하리니(We will live again in freedom in the garden of the Lord)”

항상 이 장면에서 수도꼭지 틀어놓은 듯 가슴 벅찬 기쁨의 눈물이 터져 나온다. 주님, 부럽습니다. 정말 부럽습니다. 지금 저렇게 돼도 제게는 아무런 아쉬움이 없사오니 주여, 저를 불러주소서!(Bring me home!). 진정 하늘에 소망을 가진 분들이 이 장면을 보고 그날을 기대하며 가슴 벅찬 기쁨을 맛보시기를 권해드린다.


<사진설명> ① 창녀로 밑바닥 인생을 살다 죽은, 양딸 코제트의 어머니(앤 헤더웨이)가 환상으로 나타나 장 발장(휴 잭맨)에게 딸을  잘 키워주겠다는 약속을 지켜줘서 고맙다며, 이제 천국에 갈 때라고 쉬라고 위로하는 장면.    ② 딸 코제트가 양아버지 장 발장이 숨질 때가 돼서야 아버지의 진심을 느끼고 오열하며 슬퍼하는 장면.  ③ 먼저 천국 간 사람들이 이 땅 너머 부활을 소망하며 장 발장을 환영하는 장면.



/박성진
연세중앙교회 오케스트라 상임단장
미래에셋대우 상무


 

위 글은 교회신문 <56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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