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산책] 화폭에 담은 예수 십자가 고난

등록날짜 [ 2018-03-07 17:24:31 ]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요19:30).

예수님은 죄에서, 저주에서, 영원한 지옥 형벌에서 인류를 구원하시려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고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숨을 거두시는 순간을 그린 작품이 많다. 그중 ‘플랑드르’(15~17세기 초까지 네덜란드와 벨기에에서 발전한 미술) 대표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와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의 작품을 살펴보자.

십자가 위의 예수 그리스도


<사진설명> 페테르 파울 루벤스 「두 강도 사이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1620, 캔버스에 유채, 429x311cm, 안트베르펜 왕립 미술관)

17세기 플랑드르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두는 장면을 소재 삼아 그림을 그렸다.

루벤스는 역사와 신앙을 비롯해 많은 제재를 작품화했다. 전성기에 접어들면서 웅대한 구상과 탁월한 표현력을 발휘해 바로크 미술의 정점(頂點)에 올랐다. 구성은 한층 더 짜임새 있고 명료해졌고, 완숙한 붓놀림 덕분에 밝게 타오르는 듯한 채색은 더욱 생기 있고 눈부시다. 등장하는 인물마다 각기 개성을 드러내서 역동적이고, 화면은 더 극적이면서 강렬하다.

루벤스의 전성기 작품인 이 그림은 그의 예술을 집약한다. 구성은 장대하다. 구도는 투시법과 명암법을 사용해 각 부분을 짜 맞췄다. 뛰어난 구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 나름의 동작과 함께 개성을 드러낸다.

예수님은 고개를 떨군 채 죽음을 맞는다. 온 하늘이 어둠에 덮이고, 저 멀리 지평선 너머로 지는 햇살은 말의 갈기에 머물렀다가 십자가 위 예수님의 전신을 비추고 강도의 상체를 거쳐 허공으로 사라진다. 예수님이 죽었는지 확인하려고 말을 탄 로마 병사가 창으로 옆구리를 사납게 찌르자 붉은 피가 흐른다. 숨을 거둔 예수님의 축 늘어진 몸은 미동도 없다. 오히려 양옆 강도들은 몸을 뒤틀며 격렬한 몸짓을 보인다. 한 병사는 사다리 위로 올라가 강도의 다리를 부러뜨리려 쇠막대기로 가격하는 동작을 취한다. 두 강도의 숨을 빨리 거두게 할 심산이다.

아래쪽에는 깍지를 낀 푸른 옷의 어머니 마리아와 붉은 옷의 요한이 이 광경을 차마 보지 못하고 몸을 돌린 채 깊은 슬픔에 잠겨 있다. 막달라 마리아는 십자가를 감싸며 예수님을 찌르는 로마 병사를 말리고 있다.

다소 어수선하면서도 힘찬 붓질과 풍부한 색채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마다 분주한 움직임을 보인다. 그 와중에 빛 속에서 전신을 드러내며 고개를 떨군 채 미동 없이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는 예수님의 모습은 보는 이를 비장하게 한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그리스도

<사진설명>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그리스도」(1435, 목판에 유채, 220x262cm,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15세기 네덜란드 화가 로히어르 판 데르 베이던(Rogier van der Weyden, 1400~1464)은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렸다.

네덜란드에 상업이 번창하자 유화(油) 개발에도 불이 붙었다. 색 밝기나 빛의 미묘한 진동 같은 현상을 표현할 길이 열리면서 플랑드르 회화는 한층 풍요로워졌다. 판 데르 베이던도 선배들이 개발한 새로운 표현 기법에 힘입어 고딕 양식이 전해준 신앙 주제를 한층 높은 인간 정신의 세계로 끌어 올렸다. 절제된 감성과 섬세하고 정밀한 표현력을 발휘해 전통적인 신앙화와 초상화에 새로운 사실성을 부여했다.

이 그림은 화면 짜임새가 뛰어나고 윤곽이 명확하다. 머리카락에서 옷 주름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부 사항을 충실하게 묘사한다.

다소 깊이 눌러 씌운 가시관 아래로 응고된 듯 흐른 피와 십자가에 못 박힌 극심한 고통 탓에 깊이 팬 예수님 이마 주름살이 선명하다. 하얀 두건을 쓴 어머니 마리아 얼굴에는 핏기가 없고 깊은 슬픔에 젖어 흘린 눈물 자국만 남아 있다. 빨간 모자를 쓴 아리마대 요셉과 검은 두건을 쓰고 호사스러운 옷을 입은 니고데모가 내려지는 예수님을 하얀 천으로 감싸는 한편, 붉은 옷을 입은 요한이 혼절한 어머니 마리아를 급히 부축하고 있다. 요한의 발밑에 있는 해골은 아담의 원죄를 상징한다.

예수님을 중심에 두고 인물 아홉 명이 양쪽에 나뉘어 있다.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눈길을 아래로 둔다. 또 비통에 찬 표정과 몸부림으로 인간 내면의 모습을 정밀하게 드러낸다. 예수님 발 쪽에는 막달라 마리아가 두 손을 모으고 슬픔에 젖어 있다. 어머니 마리아의 혼절한 자세는 예수님 자세와 비슷해 두 사람이 서로 고통을 나누는 듯하고, 좌우 두 그룹의 인물을 무리 없이 이어준다.

풍부하고 선명한 색채, 부드럽게 처리한 그림자, 우아하게 잡힌 옷 주름, 균형 잡힌 구도에서 플랑드르 회화의 전통을 엿볼 수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모습을 자연풍경 속에 두기보다 건축적 공간 속에 배치한 것은 작가의 기발한 발상이다.

이 대담한 구상은 채색된 조각상처럼 서로 붙어 있는 인물을 질서 있게 배치해 보는 사람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사실적인 사건보다 인간 내면으로 파고드는 비통함을 깊이 있게 드러내 더할 수 없는 비극적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박소영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56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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