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8-04-20 18:52:25 ]
침례 요한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아들로서 예수의 길을 준비하는 일을 자기 사역으로 삼았다. 침례 요한은 예수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요1:29), “태초에 하나님과 같이 계신 말씀”(요1:1), “하나님의 아들”(요1:33)이라고 증거했고, 예수 그리스도께 침례를 베풀었다. 오직 예수 한 분만 드러내고 사라진 인물, 침례 요한을 그린 작품을 감상해보자.
<사진설명> 렘브란트 반 레인, <설교하는 침례자 요한>, 1635~1636. 목판에 유채, 62.7×82.1cm. 베를린 국립미술관
설교하는 자 요한
17세기 바로크시대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Rembrandt van Rijn, 1606~1669)이 복음을 전하는 침례 요한을 소재로 그렸다.
한 가지 색을 사용해 색의 짙고 옅음을 달리하면서 밝고 어두움을 나타내고, 펜으로 자유롭게 선을 살려 윤곽을 드러내는 ‘그리자유(Grisaille) 기법’으로 그렸다. 그리자유 기법은 일반적으로 회색이나 갈색계통만을 사용하는 모노크롬(monochrome)으로 그린 회화를 말한다. 이 그림은 옅은 갈색과 황토색을 사용해 밝은 곳을 찾아 채색했다.
타락해가는 예루살렘을 등지고 광야로 나간 침례 요한이 폐허 광장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사람들 앞에서 왼손은 가슴에 얹고 오른손을 내밀어 “회개하라”고 외치고 있다. 진실하게 외치는 침례 요한의 모습을 표현했다. 전신을 드러낸 요한은 다른 인물에 비해 그리 크지 않게 묘사됐지만 전신에 빛을 받아 힘차고 강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렘브란트는 침례 요한만을 주인공으로 그리지 않았다. 오히려 주변에 있는 군중을 밝은 빛으로 비춰 청중의 모습을 보게 했다. 군중 대부분은 침례 요한의 호소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채 각자 자기 볼일을 무심히 하고 있다. 화려한 옷차림을 한 제사장과 바리새파로 보이는 세 사람이 그림 앞쪽에서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회개하라” 외치는 간절한 요한의 설교와 그에 무관심한 군중 모습이 대비돼 평온한 색조임에도 두려움을 느끼게 한다.
고통스러운 시대를 반영하듯 하늘은 어둠이 덮여 있고 폐허에는 부서진 건축물이 널려 있다. 폐허 광장 뒤로 펼쳐진 들판은 무척 황량하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군중은 렘브란트가 살던 암스테르담 유대인 거리에서 직접 스케치한 것으로 매우 사실적이다.
천부적 예술 의식으로 거장(巨匠)다운 면모를 보여주면서 판화의 세계를 보는 듯한 특유의 예술 경지를 나타낸다. 판화 표현에 가까운 기법을 사용했다 할지라도 심오한 성경 주제를 자유롭게 시각화하는 렘브란트의 천부적 재능은 또 다른 심오한 예술 경지를 체험케 해준다.
<사진설명> 레오나르도 다빈치, <침례자 요한>, 1513.
목판에 유채, 69×57cm.
파리 루브르 미술관.
침례자 요한
16세기 전성기 르네상스 이탈리아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가 생애 마지막 작품으로 침례자 요한의 모습을 그렸다.
다 빈치는 호기심 많고 창조적인 인간이었고, 모든 학문에 다재다능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활기 넘치는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를 이끈 최초의 거장이라는 명예를 차지한 천재 화가였다. 그는 자연과 인간을 끈질기게 탐구하고 서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조형 원리를 창안해 고전 미(美)를 넘어 새로운 미를 창조했다. 과학 세계가 보여주는 정확성을 창의 정신으로 발전시켜 예술 세계에 구현했고, 현실 세계와 이상 세계의 조화로운 일치를 시도했다. 다 빈치 회화는 가장 고귀한 예술로 자리매김했고, 화가 레오나르도는 창조적 능력을 지닌 자로 인정받았다.
이 작품은 색과 색 사이 경계선 구분을 명확히 하지 않고 부드럽게 처리하는 ‘스푸마토(Sfumato)’와 명암 대비 효과를 사용하는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을 함께 사용했다. 머리카락과 털옷 표현도 스푸마토와 키아로스쿠로를 극대화해 뚜렷한 선이 보이지 않으나 신비한 인상을 준다. 인체를 단순하고 대담한 구도로 화면 가득 채우면서 명암을 대비해 부드러운 어둠 위로 반신상이 빛을 받아 드러나도록 의도했다.
동시에 절제된 행동에서 짓는 그의 얼굴표정에서 고전적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아무런 장식 없이 오직 어둠뿐인 배경 속에서 침례 요한이 황금빛 반신상을 드러내며 마치 환영(幻影)처럼 떠오르고 있다. 황금빛 상반신은 어둠에 찬 세상을 밝히면서 자신이 빛의 증언자임을 드러내는 듯하다. 십자가 모양 지팡이를 든 왼손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오른손을 들어 검지손가락으로 십자가와 나란히 하늘을 가리키고 있다.
침례 요한은 보통 아기 예수와 함께 노는 어린 아이 모습, 혹은 예수에게 침례를 주는 중년 남성으로 그려졌는데 다 빈치 작품에서는 청년인 점이 특징이다.
이 세상을 구원할 메시아가 오고 있다는 희망을 던져주는 침례 요한의 인물됨을 극히 절제된 행동에도 대담하게 빛으로 표출해내고 있다.
/이은주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57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