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산책] 서양 회화의 아버지 ‘조토 디 본도네’

등록날짜 [ 2018-06-01 14:00:20 ]

회화혁명 일으킨 이탈리아 화가
전통적 비잔틴 양식 탈피하여
자연주의적·회화적 기법 도입
그림 속 인물에 생기 불어넣어

실제보다 실제 같은 그림으로
르네상스 ‘회화의 시대’ 열어


최초의 르네상스 화가로 알려진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7~1337)는 회화에서 혁명을 일으킨 이탈리아 화가다. 비록 주제 면에서는 중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회화에 새로운 표현 양식을 창안했다. 수세기 동안 이어진 비잔틴 전통에서 벗어나 인물과 일화를 자연주의적이고 서술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노력했다. 풍부한 표현력으로 인물들의 감정을 뚜렷이 드러내면서 자유롭게 공간을 구사해 인물을 극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마치 무대에서 행해지는 듯한 박진감 있는 작품을 창작했다. 조토 화풍의 특색을 떠올리며 두 작품을 감상해 보자.

<동방 박사의 경배>

<사진설명> <동방 박사의 경배> 1320년. 프레스코&템페라, 45.1×43.8cm. 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

별을 따라 온 동방박사들이 갓 태어난 아기 예수에게 경배를 드리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화면 중앙 바위산과 마구간을 합쳐 놓은 듯한 장소를 배경으로 막 출산을 마친 마리아가 누워 있고 좌우로 동방 박사들과 목동들이 각각 천사에 이끌려 예수를 경배하고 있다. 동방 박사는 권력의 상징인 왕관을 내려놓고 무릎을 꿇고 아기 예수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리고 있다. 그 옆으로 나머지 사람들이 손을 모은 공손한 자세로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이 예수에게 바치는 황금, 유향, 몰약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황금은 왕권, 유향은 신성, 그리고 몰약은 죽음을 통한 희생을 뜻한다. 조토는 정해진 형식은 따르면서도 원근법이라는 새로운 기법을 이용해 그림에 깊이와 거리감은 물론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공간감을 만들어냈다. 물론 아직 완벽하진 않다. 마구간으로 보이는 건물은 너무 작고, 인물은 너무 크다.

그런데도 조토가 일으킨 혁명은 대단한 것이었다. 로마 미술 이후 천 년 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회화적 공간이 회복된 것이다. 조토는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를 자연스럽게 표현하고자 했다. 특히 그는 그림 속 인물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이를 위해 조토는 역동적인 인물들을 등장시켰는데, 이들은 서로 눈을 바라보고 대화하며 감정을 나눈다. 구성도 변화를 추구했다. 무표정한 인물들이 가로로 나열돼 있었던 기존 회화에서 벗어나 정면이나 측면뿐만 아니라 등을 돌리는 모습까지 그렸다. 이로 인해 작품은 더욱 역동적이고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한편 하단 오른쪽을 보면 목동들이 데리고 온 것으로 보이는 양과 염소도 그렸는데 매우 정교하고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다. 관념의 세계였던 종교화에 실재(實在)하는 대상을 관찰해 그려 넣은 것이다. 경직된 중세 미술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에게 조토가 일으킨 작은 물결은 거대한 파도로 다가왔다. 미술에 인간성을 불어 넣은 조토는 평생 거장으로 칭송받았고 그 이전의 어떤 화가도 누려보지 못한 명성과 부를 얻었다. 그가 죽었을 때 스물네 살의 젊은 청년이었던 이탈리아 소설가 조반니 보카치오(Giovanni Boccaccio, 1313~1375)는 소설 「데카메론」에서 조토를 이렇게 기록했다. “조토는 자연에 존재할 수 없는 천재였다. 그가 그린 자연의 모습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아서 재현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다. 사실 그가 그린 그림을 수차례 보고 있노라면 눈이 속을 정도였는데, 어떤 작품은 마치 그 실재를 마주하고 있는 듯했다. 그는 진정한 천재였고 마에스트로였다.”



<유다의 입맞춤>


<사진설명> <유다의 입맞춤> 1304~1306년. 프레스코, 200×185cm. 파도바 스크로베니 예배당.


이 그림은 조토 디 본도네가 14세기 초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예수님이 체포당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다.

이 그림은 예수님의 체포보다는 유다와 만남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유다는 그의 노란 망토로 예수님의 몸을 감싸면서 입을 맞추려 하고 있다. 예수님과 유다가 서로 노려보는 눈초리가 결연하다. 유다는 좁은 이마에 푹 들어간 눈, 찡그리는 표정이 전형적인 악당 얼굴이다. 그런데 유다의 입맞춤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 예수님은 의연한 표정과 연민 어린 시선이 오히려 평온한 느낌을 준다.

두 인물 좌우로 횃불과 창을 높이 치켜든 무리가 몰려오고 있다. 막대기를 잡은 손이 그분의 머리를 뒤에서 내리치려 하고, 제자인 베드로는 칼을 뽑아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자르며 그분을 지키려 하고 있다. 회청색 망토를 입은 병사는 제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팔을 벌려 막고 있다. 오른쪽 붉은 망토를 걸치고 무리와 함께 대제사장은 오른손으로 그분을 가리키며 체포를 지시하자 한 병사가 나팔을 불고 있다.

많은 무리의 얼굴들을 옆면으로 그려 놓아, 인물들의 머리가 중요하게 간주됐으나 대열을 짓고 있는 병사들의 얼굴은 드러내지 않았다. 이런 경향은 고대의 조각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그분의 체포 장면에 역동감을 부여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조토는 무엇보다 예수님과 유다의 표정에 각기 내면에 숨은 인간성까지 드러내는 새로운 표현 기법을 개척해 현실성과 종교성을 잘 융합시켰다. 이로 말미암아 회화의 경지를 한 단계 높임으로써 르네상스 초기에 세칭 ‘회화의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이은주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57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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