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8-07-12 11:34:16 ]
원작은 ‘피에르 드 보마르셰’의 희곡
모차르트가 오페라화해 선풍적 인기
귀족의 비도덕성 비판하는 내용으로
프랑스 혁명 일으킨 작품으로 손꼽혀
모차르트(1756~1791)는 6세 때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의 천재성이 하도 기특해서 여왕이 “선물을 줄 테니 원하는 것을 말해 보라”고 했다. 그러자 모차르트는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 옆에 앉아 있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고 “제가 크면 나중에 마리 앙투아네트 공주와 결혼하게 해 주세요”라고 말했다. 실제로 모차르트는 성인(成人)이 될 때까지 마리 앙투아네트를 무척 흠모했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정략 결혼을 해서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아내가 됐다.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모차르트가 자신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마리 앙투아네트의 오빠이자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 요제프 2세에게 들고 갔을 때, 황제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오페라의 내용은 너무 위험해. 최근 내 여동생이 편지를 보내 왔는데 프랑스 국민이 어찌나 무서운지 떨고 있다더군.”
<피가로의 결혼>은 프랑스 극작가 피에르 드 보마르셰(Pierre de Beau-marchais)의 희곡을 오페라화한 작품인데 연극 자체도 흥행을 거뒀지만 여기에 모차르트의 주옥같은 멜로디들이 입혀지면서 유럽 전역에 선풍을 일으켰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도 나왔던 백작 부인 로지나와 하녀 수잔나의 ‘편지의 이중창’ 외에도 많은 주옥같은 아리아들은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당대 교향악의 거장 하이든조차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공연을 한 번 보고 아리아들이 꿈에 여러 번 나올 지경”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랴의 이발사>에도 역시 동명의 주인공이 나온다. 이런 피가로를 통해 모차르트는 자신의 정치 성향 때문은 아니지만 자유분방한 성격을 바탕으로 당시 귀족들의 비도덕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사진설명> 바람둥이 귀족 알마비바의 부인 로지나가 하녀 수잔나를 시켜 편지를 쓰게 하는 소프라노 이중창.
모차르트는 알았을까. 자신이 작곡한 오페라가 자기가 섬긴 주군(主君) 요제프 2세의 여동생이자, 자신이 청혼하고 흠모했던 마리 앙투아네트를 기요틴에서 목 잘리게 한, 1789년에 발발한 프랑스 혁명에 결정적인 불을 지폈다는 사실을.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차르트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죽기 2년 전인 1791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기요틴으로 보낸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Robespierre)는 프랑스 혁명 이후 조금이라도 자기 기준을 벗어나면 반(反)혁명세력으로 간주하여 기요틴으로 보냈다. 이른바 ‘공포정치’를 펼친 것이다.
정치 불안과 전쟁 등으로 당시의 식량 사정은 최악이었는데, 흔들리는 민심을 잡고자 또 다른 희생양이 필요한 상태에서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라고 말했다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1793년 10월 16일, 사람들 앞에서 기요틴 사형을 집행한다. 남편 루이 16세가 기요틴에서 목이 잘린 지 9개월 만이었다. 정말로 그 시국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그렇게 말을 할 만큼 ‘무개념자’였는지는 의문이다. 아마도 오스트리아 출신 왕비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악의적으로 퍼트린 소문일 것이다.
로베스피에르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참수한 이듬해 자신의 동지이자 유일한 친구인 카미유 데물랭, 카미유의 부인 루실, 오랜 혁명 동지인 조르주 당통마저 기요틴으로 보냈다. 반혁명분자를 색출하고자 한 그의 잣대를 비켜 갈 사람은 없었고, 독선은 점점 심해져 갔다.
그런 그에게 평안이란 눈꼽만큼도 없었고 불면증과 공황장애까지 생겼으며 결국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혁명위원회에 체포돼 형식적 재판을 받고 다음 날 자신이 1만 명의 목을 잘랐던 기요틴에서 동일한 운명을 맞이했다.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마7:2).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약2:13).
※기요틴: 기둥 두 개가 나란히 서 있고 그 사이에 비스듬한 모양의 날이 있는 도끼가 달려 있어서, 그 아래에 사형수를 엎드리게 한 다음 사형 집행자가 끈을 잡아당기면 도끼가 밑으로 떨어져서 사형수의 목이 잘리도록 장치되어 있다.
/박성진
연세중앙교회 오케스트라 상임단장
미래에셋대우 상무
위 글은 교회신문 <582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