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8-08-13 13:37:46 ]
‘부오닌세냐’ 소박하지만 화려하게
‘카라바조’ 사실적인 일상 묘사로 예수님과 제자들 만남 표현해
예수님이 제자를 삼으실 때, 제자가 된 자들은 한결같이 보잘것없는 인물이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를 낚는 어부 베드로와 안드레를 첫 제자로 삼으시고, 뒤이어 역시 어부인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제자로 삼으셨다. 심지어 세리(稅吏) 마태도 부르셨다. 세리는 로마제국에 빌붙어 세금을 징수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스라엘 동족에게는 죄인과 동등하게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 제자가 된 이들은 조금도 주저하거나 의심하지 않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시는 장면을 그린 두 작품을 감상해 보자.
<사진설명>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심> 두초 디 부오닌세냐, 1308~1311년. 목판에 템페라, 46×43.5cm. 워싱턴 내셔널 갤러리.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심
14세기 초, 이탈리아 화가 두초 디 부오닌세냐(Duccio di Buoninsegna, 1255~1318)가 그린 작품이다. 예수님이 베드로와 안드레를 제자로 삼는 광경을 소재로 삼았다. 바위 기슭에 선 예수님은 고난을 상징하는 붉은 옷과 왕의 지위를 말해 주는 보랏빛 망토를 걸치고 권위에 찬 자세로 두 어부 베드로와 안드레를 부르고 있다. 세 인물이 나누는 눈길, 표정, 부드럽게 흐르는 옷 주름은 소박하지만 화려한 경향의 시에나 화파(派)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 준다. 화면은 황금빛 하늘, 초록빛 바다, 바위 해안으로 삼분돼 있고 고깃배가 바다를 크게 차지한다. 바다 물결과 물속에 있는 물고기를 보면 다소 평면적이어서 아직도 중세 전통에 대한 두초의 온건한 태도가 엿보인다. 갈릴리 호수에서 베드로와 안드레 두 형제가 고기를 잡고 있을 때 예수님의 지시로 그물에 가득 차도록 고기를 많이 잡아 기뻐하는 두 어부에게 예수께서 오른손을 내밀어 따라오라는 손짓을 한다. 그러나 두 형제 중 베드로는 하던 일을 멈추고 오른손을 들어 ‘왜 하필이면 우리입니까?’ 라고 묻는 듯 의아한 표정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 안드레는 고기를 걷어 올리다 말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예수님을 바라본다.
세 인물이 짓는 표정과 자세를 보면 이전에 볼 수 없던 그들 나름의 인간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당시로서는 매우 독창적이고 중세 전통에서 한 걸음 나아간 특징을 보여 준다. 특히 예수님을 과거 전통대로 다른 인물보다 크게 그리거나 위용이 넘치는 자태로 그리기보다는 좀 더 인간적인 모습으로 그린 점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해 나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진설명> <세리 마태를 부르심> 카라바조, 1599~1600년. 캔버스에 유채, 348×338cm. 로마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교회.
세리 마태를 부르심
17세기 초 이탈리아 화가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가 그린 작품이다. 예수님이 세리 마태를 제자로 삼는 광경을 소재로 삼았다. 카라바조는 고전 규범이나 전통 인습을 따르기보다 눈에 보이는 자연이 추하든지 아름답든지 있는 그대로를 묘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카라바조는 성경 주제 하나하나를 거짓이나 꾸밈을 삼가고 자신이 살던 시대에서 볼 수 있는 일상 모습으로 바꿔 마치 눈앞에서 보는 듯이 사실적으로 화폭에 담았다. 이런 사실 묘사를 통해 사실주의 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을 뿐 아니라 당시 예술에 큰 영향을 끼쳐 추종자를 많이 낳았다. 이 그림도 카라바조의 화법대로 예수님을 위엄 넘치기보다는 서민적 풍모를 지닌 장년으로 묘사했으며, 등장인물들을 천대받는 하급 부류의 인물들로 과감하게 채웠다.
이 그림에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실내의 어둠을 가르는 강렬한 빛이다. 예수님이 계신 쪽에서 쏟아지는 빛은 창에서 들어오는 빛을 압도하면서 명암 대비로 예수님의 등장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세리 세 명과 칼을 찬 앞잡이 두 명이 탁자에 둘러앉아 수금한 돈을 셈하고 있다. 늙은 세리는 엉거주춤 서서 안경을 만지고 젊은 청년이 고개를 숙여 셈하고 있는 동전을 내려다본다. 그때 마태를 본 예수님이 베드로와 함께 실내로 들어와 마태를 향해 오른팔을 뻗어 ‘너’라고 지목한다. 베드로는 누구를 가리키는지 몰라 예수님 흉내를 내며 머뭇거리고 있다. 앞잡이로 보이는 깃털 모자를 쓴 청년은 놀라서 뚫어져라 예수님을 쳐다본다. 등을 보이고 앉은 앞잡이 청년도 난데없이 나타난 침입자를 경계심을 가지고 쳐다본다. 그런데 베레모를 쓴 세리 마태는 ‘너’라는 예수님의 지목에 놀라 눈을 크게 뜬 채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고 있다. 맨발인 예수님과 세리 마태가 처음 만나는 순간을 빛과 어둠을 이용해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은주 기자
위 글은 교회신문 <58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