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산책] 찬송가 1장 송영 <만복의 근원 하나님>

등록날짜 [ 2019-07-03 13:50:41 ]

윈체스터대 교목으로 사역하면서
학생들 바른 믿음 갖게 하려고
아침·저녁·자정에 부를 찬송시 지어


 영국 남동부의 마을 ‘하트퍼드셔’에서 태어난 토머스 켄(Thomas Ken, 1637~1711)은 여관을 운영하던 부모님 슬하에서 유복하게 자랐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자 결혼한 의붓누나가 토머스를 데려가 키웠다.


15세가 된 토머스는 윈체스터대학교에 입학했다. 전교생이 남자인 데다 기숙사 생활을 해야 하는 엄격한 학교였다. 딱딱한 학교 분위기와 의지할 데 없는 상황에 고통스러울 때마다 토머스는 하나님 말씀을 생각했다.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시68:5)”라는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만 의지했다.


찬송시 맨 마지막 절이 1장 가사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토머스는 25세에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모교인 윈체스터대학교 교목(校牧)이 되었다. 토머스 목사는 혈기 왕성한 남자 대학생들이 경건하게 신앙생활하도록 찬송시를 만들었다. “나의 영혼아 태양과 함께 일어나라” “나의 하나님이여 이 밤에 주께 영광” 같은 가사처럼 아침, 저녁, 자정마다 학교에서 부를 찬송시를 지었는데, 찬송시의 맨 마지막 절이 한국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가사가 되었다. 작곡자는 미상이지만, 칼뱅의 제자인 루이 부르주아가 작곡했다고 전해진다.


만복의 근원 하나님
온 백성 찬송 드리고
저 천사여 찬송하세
찬송 성부 성자 성령


찬송시 끝에 삼위일체 하나님 강조
당시 영국 국교회는 시편 외 다른 노래들을 찬송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토머스 목사는 찬송시를 지어 학생들이 경건함을 유지하도록 가르쳤다. 또 예수님이 그저 사람일 뿐이라는, 당시 사회에 만연한 이단 사상을 경계하도록 했다. 토머스 목사는 예수님이 곧 성자 하나님이라는 진리를 보호하려고 찬송 끝에 하나님이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의 세 인격으로 존재하신다는 점을 강조하는 구절을 넣었다. 학생들이 바른 말씀 아래 성장할 수 있게 인도한 것이다.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송영이다. 마지막 가사 “찬송 성부 성자 성령”은 하나님의 본체(빌2:6)시나 인류의 죗값을 대신 갚으려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몸소 오신 ‘복의 근원’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있다.


왕실 목사지만 왕의 잘못엔 단호
토머스 목사는 교목으로 지내다가 1680년 국왕 찰스 2세의 전담 목사가 되었다. 찰스 2세는 국교를 보호하는 등 개신교에 호의적이었지만 연애에 자유로워 공개된 애인만 50명이었다고 한다. 왕의 최고 참모마저 이에 반감이 있을 정도였다. 왕은 자신의 시녀를 목사 사택에 재우려 하는 등 토머스 목사를 괴롭혔다. 토머스 목사는 찰스 2세를 꾸짖기도 하면서 아무리 왕이라 해도 올바르지 않은 명령에는 복종하지 않았다.


찰스 2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제임스 2세는 개신교에 부정적이었다. 이슬람교 등 모든 종교의 관습을 허가하는 신앙자유선언(Declaration of Indulgence)을 만들었다. 토머스 목사는 동료 6명과 이 선언에 반대하다가 런던탑에 수감되었다. 이후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토머스 목사는 탑에서 풀려나 롱릿(Longleat)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지내다 1711년 3월 19일 74세를 일기(一期)로 세상을 떠났다.



<사진설명>토머스 목사가 일생의 마지막을 보낸 롱릿(Longleat)이라는 작은 도시. 왕실 목사로서 성경과 반대되는 법안을 비판하다가 구속된 후 풀려나 이곳에서 머물렀다.




위 글은 교회신문 <631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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