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산책] 평생 현역을 꿈꾸는 거장을 만나다

등록날짜 [ 2019-09-26 11:37:12 ]


<사진설명>비올리스트 노부코 이마이


76세 노익장 지난 9월 19일 내한 연주

늘 소식하고, 배우고, 연습에만 몰두

그리고 교만하지 않고 끝없이 탐구했던

노력의 결실만큼이나 멋진 선율을 선사


1943년생 76세 비올리스트인 노부코 이마이 교수가 금호문화재단 초청으로 지난 9월 19일 연세대 내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독주회를 가졌다. 한국에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 귀한 무대였다. 빈 필하모닉의 오자와 세이지 페스티벌에 제자들과 참가하고자 일본을 방문한 길에 한국에서 초청 독주회를 연 것이다. 최근 정치적으로 한일관계가 어느 때보다 냉각되어 있지만 일본계 배경을 가진 노부코 이마이 교수의 순수한 예술적 성취와 열정, 그리고 한국 팬들의 사랑은 이런 차가운 현실들은 초월했다. 금호아트홀 연세 객석은 낯익은 중견연주자들, 교수들, 음악 전공자들이나 학부모들, 상당한 조예를 가진 음악인들로 가득 찼다.


교수라면 모를까 연주가로서 76세면 대부분 은퇴하지만 마담 노부코는 과거나 지금이나 활발하게 연주한다. 연주회 전전일에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여쭤보았다. 이렇게 시간을 빼앗아서 실례가 아닌지. 너무 피곤하게 해드린 것이 아닌지…. 인사를 건네자 노부코 선생님의 대답은 이랬다. “아침 먹고 나서 얼마 전(저녁 7시)까지 연주 홀에서 맞춰봤어요. 피아니스트가 무척 훌륭해요. 그렇게 음악을 맞추니 에너지가 넘쳐요. 이번에 좀 색다른 것을 시도하고 많은 것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숨길 수 없는 대가의 포스란 이런 것이 아닐까? 실제로 연주 당일에도 수려한 외모보다 멋진 연주 실력을 갖춘 피아니스트 김태형 교수(경희대)의 받쳐주는 호흡은 경이적이었고 그는 피아노 듀오로서 대단한 귀의 소유자였다.


비올리스트 노부코는 어릴 적 도호가쿠엔을 졸업하고 줄리아드, 예일을 거쳤지만, 1967년에 제네바국제콩쿠르와 이후 뮌헨 ARD 콩쿠르에 우승하면서 유럽에 거점을 두게 된다. 기돈크레머, 이작 펄만, 핑커스 쥬커만, 정경화, 미샤마이스키 등 많은 솔로이스트들과 활동하고 베르메르 콰르텟, 런던심포니, 베를린필에서도 활동하면서 많은 음반을 냈고, 연주회와 페스티벌에 끝없이 참가해왔다. 늘 소식(小食)하고 음악하는 것 외에 다른 일정을 짜는 것을 꺼릴 만큼 선택과 집중의 대가이기도 하다. 늘 배우고 지금도 늘 연구하면서 늘 연습하는데, 지금은 마드리드 왕립음학원과 크론베르그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필자와는 조금은 각별하다. 딸아이를 2016년 연세대2학년 시절부터 눈여겨 보아주고, 대학 졸업 후에는 손녀딸처럼 거두어 제자로 받아주신 오랜 인연이 있다. 딸아이는 그분과 무대 위에 올라서는 순간부터는 까마득한 거인 앞의 작은 난쟁이처럼 압도당함을 느낀다고 한다. 자그마한 체구와 좁은 어깨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는 그 어떤 것보다 무게 있고 설득력이 넘친다. 그녀의 삶이 보여준 진솔함의 무게만큼이나, 그 세월의 깊이만큼이나, 그리고 교만하지 않고 끝없이 탐구했던 그 노력의 결실만큼이나 가을밤의 정취와 슈만과 브람스, 바르톡과 베토벤의 서정을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절정으로 되살려냈다. 참으로 선율과 표현 하나하나가 비올라의 한계를 뛰어넘으면서도 비올라의 따스하고 깊은 장점은 모두 간직해내서 76이라는 연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모든 관객의 넋을 빼앗는 무대를 선보였다. 분명 비올라인데도, 약음기를 끼웠을 때조차도 소리가 종처럼 선명했다. 가장 높은 고음에서도 음가 없는 바람 소리가 아닌, 정확한 음정을 그렇게 옅은 바람에 실어 무대 끝까지 실오라기만한 떨림 없이 흘려보내서 온몸을 전율시킬 사람은 전 세계에 마담 노부코 밖에 없을 것이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마담 노부코를 볼지 모른다는 마음에 관객들을 더욱더 애잔하게 만든 무대였음은 물론이다.



/박성진

연세중앙교회 오케스트라상임단장

미래에셋대우 상무




위 글은 교회신문 <642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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