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2-03-21 21:41:37 ]
멘델스존 향한 증오 쌓아올리며
반(反)유대주의 표출한 바그너
바그너 사상에 심취한 히틀러
그 증오 이어받아 유대인 탄압
아우슈비츠 가스실 향하는 길에
바그너 음악 틀며 유대인 학살
<사진설명> 바그너가 세운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내부. 1876년부터 매해 ‘바이로이트 축제’를 개최해 바그너의 오페라 작품만 공연하고 있다
시대의 앙숙이던 두 음악가의 곡이 결혼식에서 늘 함께 연주되는 것이 아이러니하다는 것을 지난 호에서 살펴보았다.
멘델스존과 바그너 당시, 반유대주의가 독일 음악계에 만연하다 보니 일부 부유한 유대인들은 재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커뮤니티를 유지할 방법을 찾아 나섰다. 일찍이 멘델스존의 고모, 누이 등이 독일을 넘어 파리나 런던에서 음악 살롱을 운영하면서 유럽의 상류사회 인사들과 교류한 것은 자신들의 가문을 지키고 입지를 넓히기 위해서였다.
바그너가 프랑스 파리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유대인 마이어베어를 찾은 것도 같은 시대였다. 바그너는 빚쟁이들을 피해 다니다가 초췌한 몰골로 파리의 마이어베어 앞에 나타나 자신의 오페라 ‘리엔치’를 추천해 줄 것을 부탁했다. 벼랑 끝에 선 바그너였으나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마이어베어가 인맥을 동원해 젊은 후배를 성공시키려고 했으나 바그너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바그너는 자신의 곡을 멘델스존이 연주하기를 바랐으나, 그렇게 되지 못한 일까지 겹치면서 유대인에 대한 깊은 환멸을 느꼈다.
1842년 독일 드레스덴에서 ‘리엔치’를 초연한 것을 기회 삼아 바그너는 독일로 귀국했다. 이때부터 그의 민족주의적 성향과 반유대적인 성향은 더 뚜렷해졌다. 1850년 자신이 쓴 책에서 “충동적인 성격, 금전에 대한 탐욕, 독창성의 결여 등이 유대인의 악습”이라며 비판했고, 이러한 편견은 더욱 심해져 1870년에는 “유대인은 페스트나 다름없는 놈들”이라는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1872년 바그너가 독일 바이로이트에 ‘바이로이트 극장’을 세울 때도 그의 반유대사상에 동조하는 많은 독일 귀족이 건축을 지원했고, 그의 언행에 불만을 품은 유대인들은 극장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은 우연히 나타난 일이 아니라 유럽 역사에 깔린 반유대주의와 바그너의 생각을 재발견해서 실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편, 바이로이트에서는 1876년부터 매해 ‘바이로이트 축제’가 열려 바그너의 오페라 작품만 공연하는데, 1883년 바그너가 사망한 후에도 그의 아내 코지마가 남편의 음악적 이념을 유지해 나갔다. 코지마 체제의 바이로이트 축제에서도 이전과 마찬가지로 당대 최고의 지휘자인 구스타프 말러는 초청하지 않았다. 말러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다.
바그너가 56세에 얻은 첫아들 지크프리트(1869~1930)가 잠시 인종주의에 반기를 들었으나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축제의 운영권은 그의 아내 비니프레트(1897~1980)에게 넘어갔다. 그런데 이 비니프레트도 반유대주의에 적극 동참해 히틀러에게 열렬한 지지를 보낸 여인이었다. 비니프레트는 히틀러와 함께 공연을 관람하며 축제의 방향을 더 선동적이고 독일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증오로 말미암은 죄악 우려
히틀러에게 있어 바그너는 독일인의 이상적 모습이 투영된 완벽한 인물이었고 그의 음악은 독일 음악의 척도였다. 아우슈비츠를 비롯한 강제수용소에 있었던 유대인들은 가스실로 끌려가는 공포에 떨면서도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바그너의 음악을 밤낮 들어야 했고, 독일이 점령한 지역의 극장에서는 매번 바그너의 작품을 공연하며 히틀러를 찬양했다. 유대인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에게는 끔찍한 기억이 아닐 수 없다.
이 탓에 이스라엘에서 바그너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을 금기시했으나, 예술가의 이념과 작품을 분리해 생각하는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기도 했다. 2010년 11월 바그너협회 이스라엘지부가 합법적으로 결성됐고, 2011년 7월에는 바이로이트 축제 100회를 기념하는 행사에 이스라엘의 오케스트라가 초청받아 바그너의 ‘지크프리트’를 연주하기도 했다.
영적인 눈으로 봤을 때, 마귀는 유대인을 향한 바그너의 증오를 근원 삼아 히틀러를 통해 끔찍한 악행을 저질렀다. 내 마음에 찾아오는 미움과 시기와 증오도 내가 의도한 것과 달리 많은 죄악들로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주님의 자녀라면 주님 닮은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내속에 자리 잡고 있는 미움 탓에 마귀의 모습이 더 많이 보이는 것은 아닐까. 작은 모습 하나까지도 성경 말씀으로 비추어 보고 간절하게 기도하며, 마귀가 틈타지 않고 죄 가운데서 벗어나 주님께 더욱 가까이 가는 자녀 되기를 소망한다.
/이현주
독일 라이프치히 국립음대 석사 졸
現) 모스틀리 필하모닉 부수석
연세중앙교회 오케스트라
위 글은 교회신문 <74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