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정석영
나를 깎아야 드러나는 검은 속살
이전엔 몰랐습니다
이 검은 심이 나의 참 모습이라는 것을
부드러운 나무에 숨어
검은 흑연이 드러날까 불안에 떨던 나날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나무에 싸여서는 어떠한 그림도 그릴 수 없다는 것을
사각사각 소리 내며 이내몸 사라질지라도
남은 생을 거룩한 구속의 밑그림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아픔의 계절 뒤에 찾아올 찬란한 계절을 품고
기쁨의 눈물 흘리며 소멸하겠습니다
위 글은 교회신문 <670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