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씨는 얼마 전 아내가 자신도 모르게 김 씨에게 차용증을 작성해 주고 빌린 돈으로 유흥비와 사치비용으로 탕진한 사실을 알게 됐다. 박 씨는 자신의 아내가 김 씨로부터 돈을 빌렸는지, 어떤 용도로 사용하였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이런 경우 박 씨가 김 씨에게 차용금을 갚아 줄 의무가 있을까?
민법상 부부간에는 일상의 가사에 관하여 서로 대리권이 있으므로, 부부의 일방이 일상의 가사(예:가옥의 임대차, 전기세, 수도세, 전화요금, 자녀양육에 필요한 비용 등)에 관하여 채무를 부담한 경우에는 다른 일방도 이로 인한 채무에 대하여 연대책임이 있다(민법 제832조).
판례에서 일상의 가사에 관한 법률행위라 함은 부부의 공동생활에서 필요로 하는 통상의 사무에 관한 법률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구체적인 범위는 부부공동체의 사회적 지위, 직업, 재산, 수입능력 등 현실적 생활상태 뿐만 아니라, 그 부부의 생활 장소인 지역사회의 관습 등에 의하여 정하여지나, 구체적인 법률행위가 일상의 가사에 관한 법률행위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그 법률행위를 한 부부공동체의 내부 사정이나 그 행위의 개별적인 목적만을 중시할 것이 아니라, 그 법률행위의 객관적인 종류나 성질 등도 충분히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위 사안에서 박 씨의 처가 임의로 남편의 이름을 쓰고 인장을 찍어 김 씨로부터 돈을 차용하여 유흥비나 사치비용으로 사용한 행위는 일상가사대리권의 범위를 넘어선 행위라고 보이므로, 남편은 원칙적으로 위 차용금을 변제할 책임이 없다.
한편 판례는 일상가사대리권을 기본대리권으로 하여 민법 제126조의 표현대리 적용을 긍정하고 있으므로 표현대리 책임 여부(대리인에게 대리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것이 있는 것과 같은 외관이 있고 또한 그러한 외관의 발생에 관하여 본인이 어느 정도 원인을 주고 있는 경우를 말함)도 문제 삼을 수 있으나, 이 사안의 경우는 부부 사이이므로 단지 처가 남편의 인감도장을 관리하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는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 정당한 이유를 인정하기 어렵고, 따라서 표현대리도 인정하기 힘들다. 표현대리가 인정되지 않을 경우 처의 대리행위는 대리권이 없으므로 무효이지만, 예외적으로 남편이 처의 법률행위를 추인한다면 민법 제130조에 의하여 처의 위 행위에 책임을 질 수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11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