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24-06-12 14:48:00 ]
“1953년 1월에 이르러 미국의 아이젠하워 신임 대통령은 이승만 대통령의 확전 주장을 일축하고 공산군에 정치 군사적 압력을 가중하면서 정전에 임하도록 압박했다. 이즈음 3월 5일, 스탈린이 사망하면서 정전회담은 급진전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 간의 대립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 대통령의 비타협적인 태도 때문에 미국은 이승만 축출 계획도 고려한다. 그런데 1953년 6월, 반공포로석방이라는 파국적인 상황에서 미국은 이승만과의 동맹을 선택한다. 그렇다면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의 미움을 받으면서까지 무엇을 위해 정전협정을 반대했던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한반도의 안보 보장! 1949년 6월부터 줄기차게 요청한 한국과 미국 간 상호방위조약 때문이었다.”(정전협정 70주년 미니다큐 E19 ‘정전협정, 머나먼 길’ 中)
EBS는 지난 2023년 6·25전쟁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국가보훈부의 지원 아래 6·25전쟁에 대한 기억을 단단한 기록으로 만들고자 미니다큐를 제작했다. ‘지식채널e 미니다큐-6·25전쟁’은 전후 70여 년 동안 쌓아 온 6·25전쟁에 대한 국내외 학술적 담론을 바탕으로, 6·25전쟁의 발발 원인부터 정전협정까지 과정을 소개한다. 현재 국가보훈부 유튜브 채널에서 미니다큐 20부작을 모두 볼 수 있다.
위 글은 교회신문 <853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