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3-01-15 10:43:41 ]
『래디컬(Radical)』을 읽고
데이비드 플랫 著 / 두란노
성경에는 하나님을 오해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예수님 당시에 성경을 가르치던 랍비와 서기관, 제사장들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을 보고 만지고 함께하였어도 자기가 알고 있는 하나님이 아니라며 핍박하고 하나님을 신성모독죄로 십자가에 못 박았다.
예수님과 동고동락한 제자들도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오해하였다. 예수께서 자기가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죽어야 할 것이며, 다시 부활할 것을 알려주시던 그때에도 제자들은 예수님 영광의 좌편과 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구했고, 다른 제자들은 그것을 분히 여겼다.
마태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이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 양과 염소를 가르신다 하셨는데, 왼편에 있는 자들은 심각한 오해를 지니고 신앙생활 한 자들이다.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이 그들의 최후다. 이렇게 하나님을 오해하는 것은 엄청나게 두려운 일이다.
이 책을 보면 내가 하나님에 관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된다. 내가 정한 하나님의 모습, 내가 정한 예수님의 모습을 바탕으로 내 상황과 환경에 그럴듯한 이유와 핑계를 대며 합리화하고 있지 않은지를. 정말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인본주의로 신앙생활 한 것은 아닌지. 말로만 신본주의를 부르짖고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한 것은 아닌지 돌아본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가족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것도, 죽은 아버지를 장사 지내러 가는 것도 말리시고 그저 주님을 따르라고 하셨다.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영생하는 방법을 물었을 때도 소유를 전부 팔아 가난한 자에게 주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셨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방법들이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명령이다. 내게도 저렇게 명령하시면 순종할 수 있을까?
초대교회를 꿈꾸는 수많은 이 시대의 교회들과 성도들이 초대교회 믿음으로 돌아가려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은 너무나 과격해서 현실과는 맞지 않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지 못했으나 예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다시 깊은 곳으로 그물을 내린 베드로처럼 순종하면 주님께서 역사하신다.
책의 제목인 래디컬(radical)이라는 단어는 ‘1. 근본적인, 철저한 2. 급진적인, 과격한 3. 급진파의, 급진주의의’라는 여러 의미를 지닌다. 예수님을 따르던 사도들과 초대교인들은 안락한 삶과는 다른 급진적인 삶을 살았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듣고 싶고 달콤한 말씀에만 귀 기울이고, 포기해야 하고 양보해야 하고 다 내려놓아야 하는 말씀은 애써 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포기하고 양보하고 내려놓는 것이 바로 급진적인 삶의 자세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며 제자들의 삶이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이다.
글/도희수
위 글은 교회신문 <321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