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1-05 15:50:27 ]
이제석 著 / 학고재
신문지 양쪽 전면에 회색 담요 사진이 담겨 있다. 사진 아래에는 “오늘밤 누군가는 이 신문을 이불로 써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는 대한적십자사 신문광고로, 신문지를 이불처럼 덮고 자야만 하는 노숙자들을 생각나게 한다. 이 광고를 보고 “밀린 적십자 회비를 내겠다” “노숙자를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고 적십자사에 문의하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났다.
이렇게 번뜩이는 아이디어 하나만으로도 세상을 뒤집은 한국인이 있다. 그가 만든 광고 하나가 국제정치에까지 큰 반향을 일으킬 정도다. 바로 광고 디자이너 이제석. 스펙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냐고? 그가 취업준비생일 때 대한민국 대기업은 모두 지방대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를 버렸다.
하지만 지금 이제석은 ‘LG’나 ‘현대’ 같은 대기업은 물론 경찰청과 서울시에서 의뢰를 받아 광고를 제작하고, UN에서 강연하는 대한민국 최고 광고쟁이가 되었다.
이제석은 겉만 번지르르하고 소비자를 우롱하기 일쑤인 화려한 광고판에 넌덜머리가 났다. 그는 광고는 소비자에게 좋은 물건을 소개하는 본질에 충실해야 하며, 진정 소비자를 생각한다면 광고에 많은 돈을 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광고는 ‘돈’으로 하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로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이제석은 미국 유학 시절에 화장실에서도 시간을 쪼개 아이디어 스케치에 매달리고, 지갑에 지폐보다 아이디어가 담긴 포스트잇을 더 많이 넣고 다닐 정도로 치열하게 새로운 생각에 매달렸다.
결국 이 아이디어 중독자가 광고의 판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었다. ‘돈’ 중심으로 보여 주기 식에 급급하던 광고판에서 ‘사람’ 중심으로 다가간 참신한 광고가 먹힌 것이다.
이제석은 단지 먹고살기 위한 광고쟁이에 그치지 않았다. 사실 그가 돈을 벌려고 작정했다면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미국에 그대로 남아 알아주는 광고회사에서 호의호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광고로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고, 한국으로 돌아와 ‘이제석 광고연구소’를 설립했다.
이제석은 돈벌이가 되지 않더라도 공익광고에 더 마음을 쏟았다. 소외 계층, 장애인, 어린이를 위한 공익광고를 만들었고, 환경 문제 등 여러 사회 문제를 톡톡 튀는 아이디어에 담아 냈다. 대놓고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세요” “환경을 보호해야 해요” 하는 것보다 우회적으로 돌려 접근한 공익광고가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처럼 ‘이제석’이라는 한 사람의 아이디어가 곤경에 처한 수많은 사람에게 도움의 손길을 주었다. 그에게서 ‘돈’보다 더 귀중한 ‘공익’의 가치, ‘생각’의 가치, ‘꿈’의 가치가 더 소중한 것임을 배운다. 어떤 가치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 지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된다.
/글 김수빈
위 글은 교회신문 <41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