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날짜 [ 2015-05-26 10:25:14 ]
이어령 著 / 열림원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자전적 산문집이다. 『어머니를 위한 여섯 가지 은유』라는 제목에서 짐작되듯, 책은 자신의 원형, 육체를 주신 영원한 원천이라는 어머니에게 헌사를 바치며 시작한다.
저자의 어머니는 영원히 다 읽지 못하는 ‘책’이며 최초의 시요, 드라마요, 끝나지 않는 길고 긴 이야기책이다. 처음 하는 ‘나들이’이며 묵직하고 당당한 ‘뒤주’다. 또 ‘금계랍(金鷄蠟, 키니네)’이며 ‘귤’이고 실물을 본 적 없는, 그러나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바다’다. 작가는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을 여섯 가지 은유의 소재로 풀어낸다.
이 책의 미덕은 희수(77세)에 쓴 노작가의 책인데도 가장 먼 기억을 끄집어내 독자를 잠잠히 생각하게 한다는 데 있다. 그러니 부디 천천히 밥알을 꼭꼭 씹어 삼키듯 읽기 바란다.
늙을수록 아이가 된다는 말이 이런 뜻일까. 작가의 유년기 기억들은 저자의 노련한 손끝에서 ‘어머니’를 불러낸다.
익히 아는 바 고(故) 이민아 목사의 부친인 저자가 칠십이 넘어 딸의 굴곡진 삶 앞에 애끓는 부성애로 기도하게 됐고 마침내 복음을 받아들였다.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말로 다하지 못한 미안함을 “네가 애통하고 서러워할 때 내 머릿속의 지식은 건불에 지나지 않았고, 내 손에 쥔 지폐는 가랑잎보다 못하다는 걸 알았다”라는 편지로 고백했다. 자식의 고통 앞에 딸의 삶의 유일 명제가 된 ‘사랑’을 아버지는 겸허히 받아들인 것이다.
“작가나 지성인들이 오만한 이유는 자신이 피조물인데도 자기가 무얼 만드는 줄 알아서입니다. 아마 그림 그리는 사람도 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자기가 무언가 창조할 수 있다는 지적 오만 때문이지요.”(171쪽)
저자가 ‘나는 피조물이었다’고 자각한 것은 지성에서 영성의 세계로의 입문이고 나를 만드신 창조자가 있음을 알았다는 말이다. 이제 영향력 있는 큰 어른으로서 남은 생애가 얼마든 저자를 부르신 하나님의 경륜을 기대해 본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같이 밥 먹는 ‘식구’가 모여 ‘가족’을 이루고 ‘가정’이 만들어진다. 이제 다시 책을 들고 어머니를, 더불어 우리 존재의 본향을 생각해 볼 때다.
/글 정성남
위 글은 교회신문 <436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