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 목사 칼럼] 예수를 배척한 결과

등록날짜 [ 2023-09-19 19:18:27 ]

구약의 선지자들처럼 예수님도

고향에서 불신 배척 경험하셔

예수 거절한 결과 구원도 없어


마가복음 강해⑭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구약에 대해 알면 알수록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 뚜렷하게 알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6장에서는 구약의 내용을 떠올릴 많은 사건을 기록했는데, 이 사건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하나의 주제를 나타내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가버나움을 떠나 고향 나사렛으로 가십니다(막6:1). 공생애 시작 후 2년 정도 지난 시점입니다. 첫 방문은 공생애를 시작할 때였고, 이때 나사렛 사람들이 예수를 낭떠러지에서 밀쳐 죽이려고 했습니다(눅4:16~30). 그런데도 나사렛에 또다시 가신 것에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려는 예수님의 사랑과 구령의 열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회당에 모여 예배드리고 구약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말씀을 전하시는데, 사람들은 상상하지 못한 예상 밖의 지혜와 권능에 깜짝 놀랍니다(막6:2). 


이때 예수께서는 ‘죄 사함’에 대해 가르치셨을 것입니다. 누가복음 24장에도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 성경을 가르쳐 주셨는데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24:44~48). 예수의 공생애와 죽음과 부활이 바로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죄 사함을 위해 예언하신 내용이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지혜와 권능을 보고도 감탄만 할 뿐 믿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이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니냐 그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예수를 배척한지라”(막6:3). 고향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메시아로서의 참 본질을 무시하고 육신적 배경에 의한 편견에 사로잡혀 예수를 배척했습니다.


유대 사람들은 자녀를 부를 때 보통 아버지의 이름을 붙여 부르는데, ‘마리아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예수의 권위를 떨어뜨리려는 의도이고, 신분적으로 미천한 목수인 것을 말하며 비아냥거리는 것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어릴적부터 예수를 봐왔고, 그의 가족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권세 있는 말씀을 듣고도 육신적 안목으로 예수를 바라봄으로써 구원주이신 예수를 인정하지 못하고 배척하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을 바라볼 때도 내가 그 사람을 이미 알고 있다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쓰시는 모습보다 내가 알고 있는 모습을 더 크게 봅니다. 이처럼 육신의 판단과 경험이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는데 방해가 되기에 믿음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친척들도 자신들이 잘 아는 예수가 능력과 권세를 갑자기 나타내자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육신의 생각으로 예수님을 오해하여 마귀 취급했습니다(막3:21~22). 항상 말씀 안에서 믿음을 가지고 내 지식과 경험을 초월해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하나님의 역사로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갑자기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었을 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구약 시대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친척과 자기 집에서는 존경받지 못하고 배척당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6:4). 


예수께서는 몇몇 병자만 안수하여 치료하신 것을 제외하고는 나사렛에서 아무런 권능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막6:5). 능력이 제한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불신 탓에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불신하는 곳에서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일어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또 우리가 여기서 중요하게 볼 것은 선지자들이 고향에서 배척받았듯 예수께서도 고향에서 배척받았다고 자신을 선지자와 비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열두 제자의 파송

예수께서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받으셨지만 사역을 중단하지 않고 다른 마을로 옮겨 복음을 계속 전하십니다. 이후 열두 제자를 세우신 주님께서 이들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을 맡기시고 이스라엘 각지로 둘씩 짝지어 파송합니다(막6:7). 성경은 어떤 사실을 증거할 때 반드시 두 사람 이상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신19:15). 그러므로 예수님과 초대 교회는 천국 복음을 전하기 위해 증인되는 사람을 파송하면서 둘씩 짝지어 보낸 것입니다. 두 사람이 힘을 합할 때는 한 사람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열두 제자뿐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에게 세상 끝날까지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지속적으로 부여하십니다. 따라서 복음 증거하는 전도자들은 기도하며 주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권세를 계속 사용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것도 가지지 말며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막6:8~9). 전도란 오직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만 되는 것이지 인간의 수단이나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알려 주고자 이처럼 명령하신 것입니다. 또 “어디서든지 뉘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막6:10)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어디를 가든지 그들이 머물 집이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모든 필요를 알고 미리 준비해 놓으실 하나님의 능력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신앙을 갖고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막6:12~13). 


예수님과 동일한 사역을 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엘리야와 엘리사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 중 가장 유명한 엘리야를 연상했을 때, 그가 행한 7가지 이적에 버금가는 14가지 이적을 보인 제자 엘리사를 떠올립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처럼 동일하게 사역하는 제자들을 보면서 예수님이 엘리야 같은 선지자처럼 여겨지며 ‘예수가 그들이 기다린 그리스도임이 확실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817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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