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곤목사 칼럼]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등록날짜 [ 2023-09-30 16:06:43 ]

예수께서 사람들을 긍휼히 여겼듯

우리도 잃어버린 영혼을 대할 때

애타하며 예수로 능력 있게 섬겨야

예수의 공생애 이적과 사역을 보며

구약성경의 선지자 떠올릴 수 있어


마가복음 강해⑮

예수님의 공생애가 2년 동안 이어지면서 예수의 소문이 많은 사람에게 전해졌고, 제자들도 예수님처럼 똑같이 복음을 전하고 이적을 나타내자 헤롯왕에게까지 예수의 소문이 전달되었습니다. 예수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다양했습니다. “어떤 이는 이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이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 헤롯은 듣고 가로되 내가 목 베인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막6:15~16). 분봉왕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는 침례 요한이 예수로 다시 살아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헤롯은 예수를 죽이려고 베들레헴에서 유아 학살을 감행한 헤롯 대왕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는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의 분봉왕으로 있을 당시 본부인을 버리고 자신의 이복동생인 헤롯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와 결혼하게 됩니다. 침례 요한이 이 일을 옳지 않다고 비난하자 그를 잡아 옥에 가두었고, 평소 침례 요한을 눈엣가시처럼 여긴 헤로디아의 간계로 침례 요한은 처형당하게 됩니다(막6:17~28).


헤롯은 예수의 사역이 침례 요한과 유사한 것을 보고 자신이 죽인 침례 요한이 다시 살아났다고 여기며 두려워한 것입니다. 이처럼 죄악은 죄를 범한 인간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안겨 줍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이후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은 것도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창3:8). 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6장에서 침례 요한이 억울하게 죽임당한 내용이 나오는데 이는 선지자가 어떤 취급을 당하고 어떤 죽음을 맞는지 보여 주면서 앞으로 있을 예수의 고난과 죽음을 미리 암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우리에게 전하는 내용은 헤롯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침례 요한을 선지자로 여겼듯, 예수를 침례 요한 같은 능력 있는 선지자라고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영육 간 결핍 해결해 주시는 은혜 

전도 여행에 파송된 제자들이 예수께 돌아와 전도 기간에 일어난 모든 행적을 보고했습니다. 제자들의 보고를 다 들으신 예수께서는 한적한 곳에 와서 잠깐 쉬라고 말씀하십니다(막6:30~31). 파송받아 수행한 사역을 잠시 멈추고 쉬면서 기력을 회복하고, 또 기도하며 영육 간의 새로운 힘과 지혜를 공급받기 위해서입니다. 예수께서도 한 사역을 마치면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심으로 새로운 사역을 준비하셨습니다(눅5:16).


예수님은 식사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사역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쉴 수 있도록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한적한 곳으로 이동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도 많은 사람이 모든 고을에서 도보로 달려와 예수의 일행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정없이 몰려드는 사람들을 ‘목자 없는 양’처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막6:34). 이때 ‘불쌍히 여기다’라는 말의 어원은 헬라어로 ‘스플랑크 니조마이’, 그 의미는 ‘창자가 끊어지듯 고통이 심하다’, ‘애간장이 탄다’는 뜻입니다. 목자 없이 방황하는 무리를 보실 때 주님의 마음이 그토록 아프셨다는 것입니다. 병들고 굶주린 그들의 시선에서 영육간의 결핍을 보신 것입니다. 주님은 언제나 따뜻한 마음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셨고, 저주의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잃어버린 영혼을 바라보며 애타는 마음으로 천국 복음을 전하는 사랑의 실천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때가 저물어 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때도 저물어 가니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막6:35~36).

굶주린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로 하여금 촌과 마을로 가서 각각 무엇을 사 먹게 하라는 제자들의 요청에 예수께서는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의 요청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순리적인 것이었습니다. 남자만 5000명이 넘는 무리의 굶주림을 채워 줄 음식이나 돈이 없었고, 돈이 있더라도 허허벌판에서 음식을 구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 기준에서 보면 주님은 순리에 맞지 않는,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제자들에게 요구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무리의 굶주림을 채울 만한 능력이 있었고 제자들을 통해 그 일을 이루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나누어 주자 오천 명이 넘는 장정과 따라온 가족까지 다 먹고도 그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나 차게 거두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를 향해 “하나님의 일에 필요한 것을 너희가 주라” 말씀하십니다. 많은 성도가 “나는 가난하기 때문에 나누어 줄 것이 없다”, “나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그러한 일을 행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이 모두가 주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기에 하는 말입니다.


오병이어 이적을 보면서 우리는 구약의 사건 두 가지를 떠올리게 됩니다. 첫 번째는 출애굽 사건에서 모세를 통해 일어난 이적입니다. 마가복음 6장에 ‘광야’라는 표현이 계속 나오는데, 우리말로는 ‘한적한 곳’(31, 32절), ‘빈 들’(35절)이라고 기록되었지만 헬라어로는 똑같이 ‘광야’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광야에서 굶주린 사람들이 배부르게 먹은 사건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만나 먹은 사건을 떠올리게 됩니다.


또 다른 사건은 열왕기하 4장에 나옵니다. 선지자 엘리사가 보리떡 20개와 자루에 담긴 채소를 나눠 주어 100명이 다 먹고도 남도록 이적을 베푼 사건입니다(왕하4:42~44).


예수께서 모세와 엘리사에 버금가는 이적을 베푼 오병이어 사건을 보며 “예수는 모세 같은 선지자구나. 엘리사보다 더 큰 능력을 나타내는 선지자구나”라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6장에서는 각각의 다른 사건을 통해 예수의 사역이 구약의 선지자를 연상케 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예수가 구약의 다른 어떤 선지자보다 더 능력 있는 분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계속>



위 글은 교회신문 <818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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