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 사회는 온통 개혁의 목소리가 넘쳐나고 있다. 정치인들은 자신이 진정한 개혁자임을 호소하고 기업들은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과감한 혁신을 단행하고 있다.
개혁을 외치는 소리는 그 방법의 차이만 있을 뿐 어느 시대에나 항상 있어 왔다. 예수가 등장하는 시대 역시 어느 때보다 개혁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로마의 압제로부터의 해방을 위한 메시아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광야에서 들려오는 침례 요한의 외침과 나사렛 예수의 이적과 표적의 소식은 그들을 흥분하게 만들었다. 당시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찬 유대 종교 지도자를 향하여 강력한 회개를 외치던 당당함, 바다의 폭풍을 한마디로 잠재우고 병든 자를 고치고 무덤 속의 죽은 자를 벌떡 일으키는 예수의 능력을 지켜보며 그들은 로마의 권세가 그 앞에서 무릎 꿇는 통쾌한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다. 개혁과 혁명의 리더 예수. 그것이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의 모습이었다. 예수가 체포될 때까지만 해도 그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빌라도 법정에서부터 십자가를 지고 오르던 골고다까지 예수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아무런 저항 없이 침묵만 지킬 뿐이었다. 예수를 향한 유대인들의 절규,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라는 외침은 종교적, 정치적 배반에 대한 분노의 함성이었으며, 조롱과 야유는 그들의 기대에 못 미치는 무기력한 개혁자를 향한 비난이었다. 기대했던 예수의 개혁은 완전한 실패였고, 실패자를 향한 분노가 결국 예수를 죽이고야 말았다. 그의 죽음은 세상과는 전혀 무관하였고 아무 것도 바뀐 것이 없었다.
그 당시나 지금이나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한다(요14:17). 십자가 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함께 무참히 무너지는 죄악의 권세와 악의 세력들이 아우성치며 떠나가는 소리들을. 인류의 모든 죄악을 단번에 해결하고 멸망으로 치닫는 죄악의 방향을 의와 생명으로 완전히 돌려놓은 최대의 영적 혁명, 인류 구원의 현장이 바로 십자가였다는 것을. 예수를 믿으라는 것은 바로 이 사건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동계성회 동안 하나님의 영적 개혁의 역동적인 힘은 그칠 줄 모르게 계속되고 있다. 죄인 되었던 자가 의인으로 바뀌고, 깊게 박혔던 죄의 근성들이 뿌리째 뽑혀 나가면서 통회자복으로 거세게 토해 내고 있다. 죽음의 길에서 생명의 길로 과감하게 돌아서는 행렬이 성회 기간 동안 그칠 줄 모르고 장렬히 이어지고 있다. 세상이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과 영적 혁명이 이 시대에 제한 없이 나타나는 것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의 확실한 증거가 아닌가.
하나님의 개혁은 우리를 돌이키려는 것이다. 하나님의 방향, 그 질서 속으로 과감히 나를 돌이키려는 것이다. 돌아가자. 돌아가는 것이 나를 개혁하는 것이요, 잠자는 내 영혼을 깨우는 것이요, 교계와 민족을 깨우는 것이다. 내 영혼아! 개혁하자. 영적 혁명을 좀더 강하게, 좀더 힘차게, 잠재울 수 없는 폭풍우같이 일으키자.
위 글은 교회신문 <57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