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는 가고 한 해는 온다.
가는 해 잡을 수 없고 오는 해 막을 수 없으니 세월의 질주는 나의 인생의 질주와 같은 것인가?
허송세월을 보내며 의미 없이 살고 있던 나에게 그분은 중대한 사명을 부여하셨다. 그분이 나를 믿고 맡기셨던 그 큰일에 나는 압도당하였고 그분만을 위해서 살고 죽으려 수없이 다짐했다. 그분은 나를 위해 죽으셨고 나는 그분 때문에 참혹한 지옥의 형벌을 면한 구사일생의 은혜 입은 자이다.
내가 무엇이기에 그토록 사랑하셨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기에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충성을 바치려 노력하나 마음같이 되지 않아 심히 내 자신이 미웁기도 하다. 나는 그분의 은혜와 사랑 안에 있기에 그분 외에는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지려 한다. 나의 소원은 언제라도 그분을 위하여 몰두하고 골몰하는 것과 그분을 죽도록 사랑하는 그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나의 한숨과 눈물, 그분의 사랑 때문에 가져보는 그 뜨거운 숨결과 삶의 함성! 나를 사랑하면 내 양을 먹이라 한 그 목소리 잊을 수 없어 나에게 맡겨준 양 무리를 위해서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던 그 날들.
주를 위해, 양 무리를 위해 찢어진 걸레처럼 수없는 상처를 안고 오늘도 내일의 새해를 맞으려 한다. 밖에서 내던지는 잔인한 돌팔매질, 거칠고 억센 세상의 성난 파도, 안에서 일어나는 끝없는 아집과 잔인한 또 하나의 상처를 파헤치는 아픔의 그 모진 날들. 어쩌면 나의 생애는 그 괴롭고 아픈 날들을 위해서 있었는지 모른다. 이것이 주를 위해 당하는 고통이라면 한없이 아파해 보자. 한없이 울어가면서 주님 사랑 좇아야 하지 않겠는가? 넉넉히 견딜 수 있는 그분의 위로와, 목사와 함께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충성된 성도들의 위로가 있기에 오늘도 나는 끝까지 견뎌야 하는 아픔으로 한 해를 맞이하려 한다.
대성전 건축이라고 하는 대과제에 순종해야 하는 절대적 실천이 나를 무겁게도 하고, 때로는 신령한 가치의 황홀한 내일의 소망을 보기도 한다.
“한 해 동안 넘치는 주의 일을 향한 성도들의 수고, 고맙습니다. 못나고 덕이 적은 목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고 비지땀을 흘리며 허덕이는 숨소리 내뱉는 충성과 과묵한 순종으로 함께 한 그 수고의 날들! 잠시 훗날에 그대들의 몫으로 영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못다한 충성에 한없이 울어버리고 싶은 마음, 아쉽기만 합니다. 주님, 용서하소서!
그분은 한 해 동안 우리의 희로애락을 계수하시고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계수하셨습니다.
그분만을 기쁘시게 하자. 육신의 때를 영혼의 때를 위해 살자. 성도여, 함께 가자. 함께 살자. 그리고 함께 죽자. 주를 위해! 함께 영광의 함성을 마음껏 질러보자. 대성전 건축의 작품과 그리고 영혼구령의 작품을 놓고 말이다. 그분만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자.
한 해를 쓰신 주님, 새해도 더 값지게 쓰시옵소서!
방관자, 무관심한 자 되지 않게 하옵소서!
성령과 함께 마감하고 성령과 함께 새 출발하게 하옵소서!
주님, 주님, 주님이여!
위 글은 교회신문 <21호> 기사입니다.